살아오면서 사람들을 경험한 결과, 정말 잘난 사람들은 스스로 잘난 체 하지 않는다. 스스로 도덕적이라고, 유능하다고 자랑하지 않는다. 그냥 겸손한 척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유능한 사람들이 스스로 유능하다고 말하는 경우를 본 경험이 별로 없다. 유능한 사람들은 자기보다 유능한 사람을 볼 줄 알고, 똑똑한 사람들도 자기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안다.
이재명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다고 선언했다. 무슨 고민을 하는 척 했지만 당 대표 출마는 이미 정해진 수순이었다. 나는 지난 3월 29일 ‘이재명 국회의원 만들려고 송영길을 사지로 내모는 민주당’(제목을 클릭하면 해당글로 이동합니다)이라는 글과 4월 21일 ‘이재명의 이중플레이가 민주당을 박살내고 있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이재명의 행보에 대해 분석한 바 있다. 이 글에서 나는 이재명이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송영길을 현혹해 서울에 보내고 그 자리를 꿰찰려고 하고 있고, 이는 당 대표로 가기 위한 수순이라고 분석했다.(참고로 이재명과 박지현의 파국에 대해서는 3월 15일 ‘박지현 내세운 민주당,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글을 통해 이미 예상한 바 있다. 이런 분석은 그냥 감으로 택시 기사들이 썰 푸는 냥 읊어대는 게 아니다. 분석 대상자인 인물이 걸어온 정치 행보와 각종 언행을 분석하면 도출되는 사회과학적 분석의 결과물이다.)
이제 이재명의 출마 선언문을 분석해보지. 출마선언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대선과 지방선거 패배 책임은 이재명 본인이 가장 큰 책임이 있다. 책임을 지기 위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다. 이기는 민주당을 만들겠다.
-당 대표가 개인적으로는 위험한 선택이지만 민주당을 위해 출마한다.
-민주당이 위기다. 더 큰 문제는 윤석열 정권이 민생 대신 정치 보복과 뒷조사가 능사인 ‘검찰 정치’가 자리잡았는데도 민주당이 위기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강력한 리더십으로 강력한 민주당을 만들겠다.
-의원특권제한 등 정치개혁을 하겠다.
-'영입'보다는 ‘양성, 발탁’을 원칙으로 유능한 인재에게 기회를 주겠다.
-유능함을 인정받은 이재명이 유능한 민주당을 만들겠다.
이제 하나씩 보자.
1. 개념을 파괴한 이재명의 패배 책임 방식
이재명의 주특기 중 하나가 언어 개념의 파괴다. 히틀러와 닮았다.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 “나는 천국을 지옥이라고 믿게 할 수 있으며 반대로 지옥과 같은 비참한 생활도 천국이라 믿게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중이 착각하게 만들고, 눈앞의 진실을 전혀 다른 것으로 가장하는 것을 '기술'이라고 불렀다. 히틀러는 '경영자'를 '종업원의 지도자'로, '독재'를 '더욱 차원이 높은 민주주의'로, '전쟁 준비'를 ‘평화의 확보'로 개념을 바꿔버렸다.
이재명의 언어 개념 파괴는 일상적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지역화폐’가 있다. 화폐로서의 기능이 없는 상품권을 마치 세뇌시키듯이 화폐라고 부르며 자신의 브랜드로 만들었다. 공식 명칭은 ‘지역사랑상품권’이다. 이와 관련해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국무회의에서 명칭을 바로 잡고 공식 명칭을 사용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지역사랑상품권’을 ‘지역화폐’라고 부른다면 ‘백화점상품권’은 ‘백화점화폐’, ‘도서상품권’은 ‘도서화폐’라고 불러야 하나?
이재명은 ‘재난지원금’을 ‘재난기본소득’으로, ‘청년배당’은 ‘청년기본소득’으로, ‘농민수당’은 ‘농민기본소득’으로, 문화예술인에 대한 지원금은 ‘문화예술기본소득’으로 부른다. 모두가 사과를 사과로 부르는데 이재명 혼자 사과를 배라고 부르는 식이다. 이미 시행하고 있는 각종 복지정책에 ‘기본소득’이라는 단어만 집어넣어 포장지를 갈아끼워서 자기 정책으로 바꿔치기 한다. 포장지 갈이는 형법상 처벌되는 범죄이기도 하다.
이재명은 심지어 지난 대선 기간 동안 지역화폐를 자신이 최초로 만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역화폐는 이재명이 성남시장에 당선되기도 전인 1996년에 강원도 화천군과 충북 괴산군이 최초로 만들었다. 이재명이 자신의 업적처럼 포장한 ‘성남사랑상품권’조차도 이재명이 성남시장에 당선되기 전에 이미 전임 시장인 이대엽 시장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이재명의 거짓말은 너무 많아서 따로 정리해도 수 십 페이지 나온다.)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 “가장 단순한 개념을 1000번은 되풀이해야 비로소 대중은 그 개념을 기억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는데 대중을 세뇌시켜 조작하는 방식이다. 한국 언론이 ‘지역사랑상품권’을 ‘지역화폐’로 부르고 있는 현상은 히틀러를 빼닮은 이재명의 대표적인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2. 이재명의 길은 ‘김대중-문재인의 길'이 아닌 ‘이회창, 정동영, 홍준표’가 걸어간 ‘패배자의 길’
역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정치인들 중에 대선 패배 후에 이재명처럼 책임을 진 사례는 거의 없다. 1987년 이후 대선 이후를 보면 민주화 운동의 거목으로 ‘제왕적 총재’로 군림했던 김대중과 김영삼을 제외한 모든 정치인들은 대선 패배 후에 책임을 지기 위해 한 동안 근신했다. 심지어 김대중도 1992년 대선에서 패배한 이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3년 후인 1995년 7월에 정계에 복귀했다.
이재명의 당 대표 출마를 ‘문재인의 길’이라고 표현한 기사가 보이는데, 이는 껍데기만 본 단견이다. 문재인은 2012년 대선 패배 이후 무려 3년이 지난 2015년 2월에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로 복귀했다.
김대중과 문재인은 공통적으로 대선 패배 이후 당 대표로 복귀하는 데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승리했다.
패배자들의 길은 달랐다.
1997년 12월에 대선에서 김대중에게 패배한 이회창은 8개월 후인 1998년 8월에 한나라당 총재로 복귀했고, 1999년 4월 보궐선거로 국회로 돌아왔다. 그나마 이회창도 3개월 만에 국회에 입성한 이재명보다는 자숙하는 기간이 제법 길었다. 이후 이회창은 당내 경쟁자 없이 독주한 끝에 2002년 대선에서 또 다시 패배했고, 2007년에 무소속으로 세번째 출마해 낙선한 이후 정계은퇴했다.
이재명의 ‘정치적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정동영은 2007년 12월 대선 패배 이후 불과 6개월 후인 2008년 4월 총선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당선에 유리한 지역구를 고르다 서울 동작구에 출마했지만 한나라당에서 울산에 있던 정몽준을 불러 올려 표적 공천하면서 낙선했다. 이후 정동영은 2009년 4.29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을 탈당해 자신의 고향인 전북 전주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국회로 복귀했다.
정동영은 이후 호남을 기반으로 정치 생명을 연명하다 국민의당이 갈라지면서 국민들에 의해 정계에서 은퇴를 당했다. 정동영의 어지러운 정치 행보는 생략한다.
2017년 5월 대선 패배자인 홍준표도 이재명과 비슷한 길을 걸었다. 홍준표는 불과 2개월 후인 2017년 7월에 자유한국당 당 대표로 선출됐는데, 당시 경쟁 후보가 이인제, 김진태, 김관용이라는 점을 보면 홍준표가 당선될 수밖에 없는 선거였다. ‘어대홍’이었다. 홍준표는 2018년 6월 지방선거를 시원하게 말아먹은 뒤에 당 대표에서 사퇴했다.
그런 측면에서 이재명이 당 대표 출마가 개인적으로는 정치적으로 위험한 선택이지만 민주당을 위해서 출마했다고 발언한 부분은 이재명의 의도와 무관하게 일부 사실이긴 하다. 이재명의 길이 이회창, 정동영, 홍준표 등 패배자들이 걸어갔던 길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민주당이다. 이재명은 이미 패배의 아이콘이다. 그런 이재명이 ‘이기는 민주당’을 만든다고? 이재명의 패배를 넘어 민주당의 패배를 만들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제 민주당은 이 패배의 늪에서 헤어날 길이 없다.
3. ‘의원특권제한’ 말하면서 ‘불체포특권 제한’은 언급하지 않은 이재명
출마 선언문에는 정치개혁을 위해 다양한 방안을 제시하면서 ‘의원특권제한’을 언급했다. 그러나 이재명은 자신의 이해관계와 밀접한 ‘불체포특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재명은 과거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을 여러 차례 비판했다.
방탄국회를 비판하고, 수사에 성역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재명 본인이 저지른 다양한 범죄 의혹에 대해 불체포 특권을 사용할지 안할지 지켜볼 일이다. 보나마나 민주당을 최대한 방패막이로 활용하고 방탄국회를 시도할 것이다,
참고로 이재명은 지난 2021년 11월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이 대장동 비리와 관련해 다양한 의혹을 제기하자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국회의원 면책특권에 대해 신속한 대책을 강구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이후 민주당에서 불체포 특권 폐지를 위한 법률 개정을 한다는 소식은 없다. 정권교체가 되자 부랴부랴 검수완박 서둘러 처리한 것이나 불체포특권 개정에 입 꾹닫고 있는 것이나 이재명을 기준에 놓고 보면 왜 그랬는지 답이 나온다.
4. 민주당, 이재명 리스크의 깊은 수렁에 빠지다
이재명은 출마 선언문에서 민주당을 자신의 방패막이로 활용하겠다고 선언했다.
“국민의 눈물을 닦고 아픔을 보듬으며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민생 정치’ 대신 보복과 뒷조사가 능사인 퇴행적 ‘검찰 정치’가 자리 잡았고, 예견된 위기가 현실화 되는데도 위기대응책이나 책임자는 보이지 않는다”
이 말은 지금의 민주당이 ‘이재명 엄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이제 자신이 당 대표가 되어 강력한 리더십으로 스스로를 지키겠다는 선언이다. 민주당은 이제 ‘이재명 지키기’에 모든 에너지를 투입하게 될 것이다. 민주당이라는 집단 자체가 이재명의 늪으로 빠져들어갈 것이다.
5. 스스로 유능하다고 말하는 뻔뻔함
지난 대선 기간동안 개인적으로 어처구니 없었던 일은 이재명 스스로 ‘공공산후조리원’을 자신의 업적으로 말할 때였다.
이재명은 2021년 12월 30일 페이스북에 “제가 경기도지사 때 만든 ‘경기 여주 공공산후조리원’”이라고 표현하며 이런 공공산후조리원을 전국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이재명은 성남시장 8년, 경기도지사 3년 동안 단 한 개의 공공산후조리원도 짓지 않았다. 언론플레이만 열심히 했을 뿐 실제로 추진한 공공산후조리원은 없다. 이재명이 언급한 ‘여주 공공산후조리원’은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의 업적이다. 2015년에 여주 공공산후조리원 설립이 확정됐고 이후 공사에 들어가 이재명이 도지사에 취임한 이후인 2019년 5월에 개원했다. 이재명은 남경필의 업적을 도둑질했다.
참고로 전국 최초는 2010년에 계획이 수립돼 2013년에 완공된 제주 서귀포 공공산후조리원이다. 설립계획을 최초로 내놓은 자치단체는 2010년 서울시 송파구로 한나라당 소속 박춘희가 구청장이었다. 아이러니 하지만 공공산후조리원을 짓겠다고 나선 최초의 자치단체장은 민주당이 아니라 한나라당이었다는 이야기다. 송파구는 제주 서귀포, 충남 홍성군에 이어 세번째로 공공산후조리원을 개원했다. 이어 전남 해남군, 강원도 삼척시 등의 순으로 공공산후조리원을 개원했고, 이재명은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재임 11년 동안 단 하나도 짓지 않았다. 유일하게 이재명이 추진한 사례는 경기도 포천시 공공산후조리원으로 2021년 1월에 공사를 시작해 올해 개원했다.
이재명이 유능하다고 알려진 대표적 사례가 무상복지 시리즈다. 위에 언급한 공공산후조리원도 거짓이었듯, 무상교복과 무상급식도 마찬가지다. 무상급식은 오세훈 덕분에 전국 지자체에서 수월하게 거의 동시에 실시했고, 전국 최초는 2006년 경남 거창군으로 당시 군수는 한나라당 강석진 전 의원이다. 유치원부터 초,중,고 전체 무상급식은 강원도 정선군이 전국 최초다.
무상교복도 마찬가지다. 전국 최초로 무상교복을 지급한 학교는 2011년 경기도 화성시의 서신중학교다. 다만 사립학교여서 제외하고나면 무상교복 도입과 관련해서는 강원도 정선군을 빼놓을 수 없다. 정선군은 정부의 교부세 불이익까지 받아가며 무상교복을 추진했다. 이재명이 말로만 정부와 싸울 때 정선군은 실제로 불이익까지 받아가며 싸웠다. 이재명이 수도권 자치단체장이라는 이점을 살려 열심히 언론플레를 해 마치 전국 최초로 무상교복을 도입한 것처럼 여론을 호도했다. 전국 최초로 무상교복을 지급한 지자체는 2018년 경기도 광명시와 용인시다. 이후 교부세 불이익까지 받았던 정선군은 물론이고 전국 대부분의 학교에서 무상교복이 지급되기 시작했다. 이재명이 시끄럽게 소음만 발생시키는 동안 다른 지자체장들은 시의회와 원만하게 대화와 타협을 이뤄내 실제 무상교복을 지급했다.
지난 대선을 돌아보면 이재명은 무상교복, 무상급식, 공공산후조리원 등 ‘무상시리즈’에서 여주 공공산후조리원을 뻔뻔하게 자신의 업적이라고 거짓말을 한 걸 제외하고는 무상시리즈를 언급하지 않았다. 자기 업적이 아니라는 걸 이재명 본인이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이재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이재명 지지자들만 지금 이 순간에도 무상복지 시리즈가 이재명의 작품이라고 굳게 믿고 있을 뿐이다.(참고로 여주 공공산후조리원을 이재명 업적으로 언급한 페이스북 글은 명백한 선거법상 허위사실유포에 해당한다.)
참고로 나는 지난 2월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의 업적이라고 알려진 사례들이 대부분 거짓으로 만들어진 허구라는 사실을 밝혀놓은 책을 펴낸 바 있다.(이재명이 당선되면 내 개인이 보복을 당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혹시라도 몸담은 회사가 불이익을 받을까봐 ‘이재명연구회’라는 실재하지도 않는 연구회 이름으로 발간했다.)
이 글에서 하나하나 소개하기에는 글이 너무 길어져서 목차만 소개한다.
이재명이 유능하다는 이미지는 막대하게 뿌려댄 언론 홍보비와 광고비 덕분이다. 협조적인 언론사에는 당근을,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사에는 광고와 협찬을 끊어버리는 방식으로 경기도 예산을 사적으로 활용했다. 그래서 기자들 사이에서 이재명을 ‘총칼 안든 전두환’이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아주 적절한 비유다. 이 책을 쓰면서 수십 만 건의 기사를 살펴보았는데 정말 낯뜨거운 기사가 정말 많았다. 조중동은 물론이고 거의 모든 언론사로부터 다양한 상을 받기도 했다. 언론사가 주는 상이 어떤 성격인지는 이재명 지지자들이 잘 알 것이다. 언론사의 상은 돈 주고 사는 상이다.
또한 이재명 스스로 괴벨스 역할을 맡아서 SNS를 통해 대중을 세뇌하는 데 열심이었고 성공을 거두었다. 이재명의 괴벨스 노릇을 마다하지 않는 소위 스피커 업자들의 조력도 큰 역할을 했다. 그렇게 민주당은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변신 중이다. ‘노무현의 열린우리당’과 ‘문재인의 더불어민주당’은 존재한 적이 없다. 이재명은 바야흐로 ‘김대중의 새천년민주당’ 수준의 ‘이재명 민주당’을 만들어가고 있다. 김대중은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한 헌신과 국정운영능력으로 이뤄낸 실체가 있는 결과물이었지만, 이재명은 민주화에 대한 헌신도 없는 가짜 인권변호사에, 가짜 업적으로 만든 허구의 결과물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모래 위에 지은 성은 무너지기 마련이다. 거짓은 영원할 수 없다.
6. ‘영입’보다는 ‘양성, 발탁’하겠다고?
마지막으로 박지현 이야기 좀 하고 마친다. 이재명은 출마선언문에서 외부 인사 영입보다는 내부에서 양성하고 발탁하겠다고 했는데, 이 말을 하기 위해서는 박지현 문제부터 짚고 가야 한다. 외부인사인 박지현 비상대책위원장을 영입하고 발탁한 사람이 누구인가? 이재명이다. 박지현을 놓고 외부 인물 영입에 대해 비판이 나오자 이에 호응하기 위해 내놓은 방안으로 보이는데, 그럴려면 우선 자기가 저지른 행태부터 반성해야 하지 않나? 마치 자기와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 태연하게 말하는 태도는 익히 내가 알던 이재명의 본모습이라 놀랍지도 않지만, 이재명을 잘 모르는 70%에 육박하는 민주당 당원들과 지지자들은 감동을 받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재명 지지자들은 자기들이 지지하는 정치인을 쏙 빼닮아서인지 이재명이 박지현을 영입했다는 명백한 사실을 외면한다. 아니 외면하는 수준을 넘어서 전혀 상관도 없는 이낙연한테 뒤집어씌우기도 한다. 민주당은 이 정도로 파렴치한 사람들의 정당이 되었다.
이재명은 처음부터 박지현을 방패막이, 얼굴마담으로 데려왔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박지현을 이재명이 내팽겨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건 비대위원장에 앉혔을 때부터 이미 말했던 바다. 지금 와서 토사구팽이 어쩌고 저쩌고 입방아 찢는 걸 보면 정치가 사회과학 영역을 벗어나 무당들의 세계에 들어섰음을 실감한다. 러시아 제국을 말아먹은 라스푸틴처럼 김어준과 그 아류들이 민주당을 주술의 세계로 몰아넣고 말아먹는 중이다.
박지현에 대한 나의 평가는 지난 3월 27일에 쓴 ‘자질 문제 제기했더니 학벌로 도망가는 박지현’으로 갈음한다. 이재명과 박지현의 싸움은 예견된 상황이다. 누가 낫다고 평가할 상황도 아니다. 같은 부류의 인간들끼리 치고박는 싸움이다. 누구 편들 이유는 없다. 한 마디만 다시 첨언하자면, 박지현을 옹호하는 당신들이 바로 꼰대다. 박지현을 동등한 인간으로 대하지 않고 돌봐주고 밀어줘야 할 어린 아이로 보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청년 담론도 마찬가지다. 나이 스무살 넘어서 자기 인생 스스로 책임져야 할 사람들을 돌봐야 할 사람으로 인식하는 그 발상이 세상을 타락시키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 마디만 더 하고 글을 마친다.
나는 평소 이재명을 알고나서는 절대 이재명을 지지할 수 없다고 말한다. 반대로 이재명 지지자들만큼 이재명을 모르는 사람들도 없다고 말한다. 독일 국민들도 히틀러가 그런 인물인줄 알았겠나? 다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됐을 뿐이다. 오늘날을 사는 우리가 히틀러를 욕하지만, 실상 우리가 그 시대 속으로 들어가면 그 당시 독일 국민들과 달랐을까? 일전에 언급했듯이 김수환 추기경 같은 분한테도 함부로 친일파 딱지를 붙이는 난폭함을 보여주는 민주당 지지자들이지만, 실상 일제시대로 돌아가면 목숨 걸고 독립운동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지금 민주당 지지자들을 보면 총칼 들고 일제에 맞서 독립운동할 듯한 기세지만 과연 그럴까?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52년에 태어난 러시아의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반파쇼투쟁’이라고 말하면서 히틀러에 맞서 싸웠던 스탈린 시대를 소환하는 것처럼, 트럼프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존재한 적도 없었던 ‘Great America’라는 허상을 불러내 위대한 미국의 담지자 흉내를 내는 것처럼 지금 대한민국에는, 더 정확하게는 민주당 주변에는 독립 투사 흉내, 민주화 투사 흉내 내는 연극인들이 넘쳐난다. 그 연극을 보기 위해 관람료와 헌금을 넙죽넙죽 내는 신도들도 넘쳐난다.
히틀러의 등장 때부터 히틀러의 위험성을 경고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소수였다. 그 소수는 핍박받았다. 오늘 이 시대를 살면서 과거의 히틀러와 그 독일 국민들을 욕하기는 쉽지만, 오늘날 현존하는 히틀러를 알아보기는 힘든 법이다. 그리고 그걸 미리 본 사람 역시 힘들고 고독한 법이다. 나는 2018년 4월 이재명 측의 후원금 제시를 거절하면서 방송한 4편의 ‘이재명 리스크’ 방송 이후 민주당에서는 조중동보다 더 싫어하는 언론인이 되었고, 온갖 핍박을 받았다. 그래서 사는 보람이 있다. 모두가 거짓을 진실이라 말할 때 홀로 일어나 아니라고 외치는 그 자체로 사는 보람이 있지 않겠는가?
김민기 선생님의 ‘친구’라는 노래가 생각나서 같이 듣기 위해 올려드린다.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요
그 깊은 바다 속에 고요히 잠기면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눈 앞에 떠오는 친구의 모습
흩날리는 꽃잎 위에 어른거리오
저 멀리 들리는 친구의 음성
달리는 기차바퀴가 대답하려나
눈 앞에 보이는 수많은 모습들
그 모두 진정이라 우겨 말하면
어느 누구 하나가 홀로 일어나
아니라고 말할 사람 누가 있겠소
눈 앞에 떠오는 친구의 모습
흩날리는 꽃잎 위에 어른거리오
저 멀리 들리는 친구의 음성
달리는 기차바퀴가 대답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