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로펌 업계는 그 어느 때보다 술렁였습니다. 대어급 전관들이 무더기로 시장에 풀리고 그 후폭풍이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지난 10월5일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의원실 통계에 따르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5월 취임 뒤 두달만에 검사 총 76명이 검찰을 떠났습니다. 올 1월부터 8월까지 따져보면 총 110명입니다. 원인이야 모두들 아시는 바 대로입니다. '친윤·친동' 아니면 불통입니다.
최근 개업한 검찰 출신 변호사 중에는 구본선 전 대검 차장(고검장)·여환섭 전 법무연수원장(고검장)·김후곤 전 서울고검장·권순범 전 대구고검장·박성진 전 대검차장·김관정 전 수원고검장·조남관 전 대검 차장 등 고검장만 7명입니다. 한창 일 할 나이인 차·부장급 퇴직검사들은 부지기수지요.
공직자윤리법상 고등법원 부장판사 이상의 법관 또는 검사장 이상 직급으로 퇴임한 사람들은 연매출 100억원 이상의 법무법인과 기업 취업이 3년간 제한됩니다.
때문에 이 고위 전관들의 개업은 크게 두 흐름으로 나뉘는데, 연매출 100억원 미만의 로펌 등으로 가는 부류 그리고 개인 개업을 하는 부류입니다.
개인 개업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훗날을 기약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검사들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면, 대표적인 사람이 소병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입니다. 현직시절 검찰총장 단골 후보자로 거론됐던 소 의원은 2013년 12월 법무연수원장을 마지막으로 퇴임 후 농협대학에 적을 두고 변호사 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한국소년법보호협회이사·한국기자협회 자문위원장·사학분쟁조정위원 등 공익적 활동에 매진했습니다.
선수들끼리는 '소 고검장이 호시우행을 하고 있다'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2019년 전남 신성장 추진위원회 위원을 맡으며 정치권으로 키를 다잡기 전까지 소 의원은 검찰총장이나 장관 후보로 꾸준히 올랐으니까요. 법무연수원장 퇴임 후 21대 국회의원 당선까지 7년 동안 관리를 참 잘 한 케이스입니다. 결국 국회 입성에 성공했습니다.
반면, 바로 정치권으로 뛰어든 영감님들 중에는 잘 안 풀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제주 '2대 천재'라고 본인 스스로 밝히고 있는 강경필 전 대검 공판송무부장이나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 같은 경우이지요. 때를 잘 만나 곧바로 금배지를 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얼른 생각나기에는 비교적 최근 정점식·유상범 등 국민의힘 의원들이 있습니다.
나머지 한 축은 연매출 100억원 미만의 로펌으로 가는 것인데 바로 이 부분이 주목할 만합니다.
전통적으로는 먼저 나가 자리 잡은 선배들이 하던 로펌의 공동대표나 파트너 변호사로 합류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2010년 중반부터는 전관 본인이 로펌을 차리는 예가 늘기 시작했습니다. 검찰 전관의 경우 강찬우 전 수원지검장이 만든 '평산'이나, 이금로 전 법무부 차관이 설립한 법무법인 '솔', 최근 성장기로 접어든 박윤해 전 대구지검장이 창립한 '백송'이 그렇습니다.
법원 전관들 중에는 서울고법 부장판사 출신의 이광범 변호사가 2012년 세운 법무법인 'LKB' 가 대표적입니다. 이 변호사는 이상훈 전 대법관의 친동생으로 이용훈 전 대법원장 비서실장과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직무대리)로도 근무했습니다. 2011년 2월 개업후 바로 '내곡동 특검'으로 임명됐는데, 수사가 마무리 된 후 변호사로 컴백한 뒤에는 '서초동 형사사건의 씨를 말렸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수임을 휩쓸었습니다. 그 덕에 10년 만에 변호사만 80여명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위현석 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가 사법연수원 동기 이재구 변호사와 2016년 설립한 법무법인 'WE', 김현석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2020년 창립한 법무법인(유) KHL도 같은 예입니다. KHL은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재직 시절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 사건’ 1심 재판장이었던 민병훈 변호사를 영입하면서 그 기세가 커졌는데, 김소영 전 대법관도 이곳에 영입됐었습니다.
그런데, 부티끄펌으로 재미를 보던 전관, 특히 검사 출신 전관들 중 서초동에서 사라지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사직로8길(내자동)으로 몰려간다고 해야 할까요. 그곳에는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있지요.
김앤장은 올해 거물급 검찰 출신 전관들을 여럿 흡수했습니다. 봉욱 전 대검찰청 차장검사를 시작으로 한찬식 전 서울동부지검장에 이어 10월 초에는 초대 수원고검장이었던 이금로 전 법무부 차관이 김앤장에 영입됐습니다. 3명 모두 윤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 후보들입니다.
로펌업계에서는 김앤장의 이런 영입이 창업자 김영무 박사의 특명이었다고들 합니다. 언제든 입각할 사람들인데다가 자체 인맥도 만만치 않아서 국내 기업형사 자문이나 송무를 채가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랍니다.
실제로 요즘 개업한 전관들의 사건 수임 물밑 경쟁은 아주 치열합니다. 대표들이 직접 영업전선을 마다하지 않고 뛰어다니는데 최근 저녁자리에서 만난 모 전직 검사장은 밤이고 낮이고, 안이고 밖이고 의뢰인 전화 때문에 식사도 제대로 못 할 정도더군요.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변호사만 1000명 규모인 김앤장이 긴장할 정도는 아닐텐데, 분명 거슬리기는 한 것일까요.
한 대형로펌 임원은 김앤장의 이런 영입 경향의 원인을 ‘김 박사의 지시’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그 임원의 뇌피셜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자른다’랄까.
어쨌든, 재목으로 보이는 부티끄펌 창립자들이 대형로펌이라는 울타리 안에 갇히면 몇가지 효과들이 발생합니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부티끄펌들은 자중지란, 본인 스스로는 울타리 안에서 고사되는.
한 예로, 한 전 지검장이 몸담았던 아미쿠스는 그가 떠난 뒤 공동대표였던 송삼현 전 서울남부지검장 마저 다른 로펌으로 가고 말았습니다. 남아 있는 변호사들로서는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닐겁니다. 그러고 보니 한 전 지검장과 송 전 지검장 보다 앞서 아미쿠스에 몸담았던 이창재 전 법무부 차관도 2020년에 김앤장으로 영입됐군요. 다만, 이 전 차관이 2019년 수원고검장 퇴직 후 창립한 법무법인 ‘솔’은 최근 권순범 대구고검장이 뒤를 이어 받아 전열을 재정비했습니다.
김앤장의 또 다른 행보도 눈에 띕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김앤장과 삼성의 사이는 퍽 데면데면했습니다. 2011년부터 인가였는데 당시 삼성과 애플이 스마트폰 특허소송으로 전면전을 치를 당시 김앤장이 삼성 대신 애플을 대리하고 나선 것이 계기였습니다. 이후 국정농단 사태 때 이재용 회장이 구속위기에 처했던 걸 법무법인(유한) 태평양이 구해준 것을 계기로, 삼성은 태평양에 일감을 몰아주고 참 따순 사이가 되었답니다.
그러나 지난 5월. 김앤장과 삼성은 다시 관계를 회복했다고 합니다. 모처에서 김 박사가 이 회장을 만나 두 시간 동안 ‘와인회동’을 한 끝에 이뤄낸 ‘쾌거’라는군요. 두사람 사이에 어떤 말들이 오갔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왠지 아른아른 그림이 그려지기도 합니다. 그 옆에 입맛을 “쩝” 다시는 서동우 태평양 대표도 보이는 듯 하구요. 이 부회장 회장 취임 전 삼성과의 관계 정상화에 성공한 김앤장은 내년에도 따숩게 보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