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를 재건축 분양한 올림픽파크포레온의 청약경쟁률이 낮다며 ‘청약 실패’를 내건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실패의 기준이 경쟁률이라면 틀린 말은 아니다. 1년 내내 세인들의 관심이 집중된 단지치고는 경쟁률이 높지 않았다.
12월 5일 진행한 일반분양 1순위 평균 경쟁률은 3.7대 1이었다. 그에 앞서 진행된 특별공급의 경우 다주택자에게 배정된 물량에서는 미달이 발생하기도 했다. 세 자녀 이상 있는 집이 전용면적 49㎡형 이하 면적에서 거주하는 것이 흔하지는 않기에 이 경우 낮은 경쟁률이 이상한 것은 아니다.
다만 아직 실패를 단정짓기엔 이르다. 분양의 성패는 계약으로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과연 청약자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계약을 포기할지에 달렸다. 청약경쟁률이 낮으면 당첨자들도 걱정이 커지기 때문에 재당첨 패널티를 감수하고서라도 마음을 바꿀 수 있다. 사실 지금은 언론이 이를 부추기는 모양새 같기도 하다.
하지만 청약경쟁률과 아파트의 미래, 구체적으로 시세는 정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과거의 분양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위의 <표>는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연구소 대표의 블로그에서 가져왔다. 2000년 이후 서울에서 분양한 아파트 중 총세대수 기준으로 규모가 큰 단지들의 청약경쟁률을 집계한 것이다.
지난 23년간 서울에서 나온 가장 큰 세대는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였다. 가락시영아파트를 재건축해 1만세대 가까운 매머드 단지로 탈바꿈하는 이 사업은 국민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또한 분양을 앞두고 지금처럼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기도 하다. 285% 용적률 때문에 동간 거리가 좁고 분양가도 비싸다며 말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16세대를 일반분양하는 데 3만4845개의 청약통장이 몰려 28.66대 1로 흥행에 성공했다.
논란은 청약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입주 당시에도 화제였다. 한꺼번에 전월세 물량이 쏟아지면서 주변 아파트들 임대차 시장까지 흔들어 놓은 탓이다. 싼값에 4년을 묶어 임대차 계약을 맺는 모습도 관측됐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시세가 치솟으면서 소음도 사라졌다. 헬리오시티에는 올림픽파크포레온처럼 전용면적 39㎡형에 불과한 소형평형이 있었는데 분양가가 낮게는 4억1700만원에서 최고 4억8600만원에 이르렀다. 이 평형의 현재 시세는 10억원을 호가한다. 1년 전에 나온 최고가 실거래 기록이 12억9500만원이다.
헬리오시티는 그래도 청약경쟁률이 높은 편이었으니 0.1대 1 경쟁률에 불과했던 단지를 예로 들어 보자. 2013년 7월 서대문구 남가좌동에서 공급된 DMC파크뷰자이는 1054세대를 일반 모집하는데 청약자가 103명에 그쳐 화제가 됐다.
하지만 지금 DMC파크뷰자이를 그때와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없다. 당시 전용면적 84㎡형의 분양가는 5억원대 초중반, 지금은 15억원을 잠깐 넘었다가 하락 중이지만 아직 11억원대를 오가고 있다.
금천구 독산동 롯데캐슬골드파크는 어땠을까? 지역주민들도 비싸다고 평가해 1.19대 1로 저조한 청약경쟁률을 기록했지만 그후로 시세는 3배나 뛰었다. 지금은 신촌에서 가장 유명한 단지가 된 ‘마래푸’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역시 875세대 일반분양을 해서 0.42대 1의 저조한 경쟁률을 기록했으나 언제 그랬냐는 듯 시세는 천정부지로 올랐다. ‘고래힐’ 고덕래미안푸르지오 또한 0.82대 1로 분양에 실패했으나 올림픽파크포레온이 완공되기 전까지는 강동구의 맹주를 자처할 것이다.
이외에도 분양 당시 외면받았던 수많은 단지들이 분양 당시와는 전혀 다른 대접을 받고 있다. 강남, 서초, 송파 등 강남3구를 비롯해 강남권역에서 나온 분양도 청약경쟁률은 천차만별이었던 것을 보면 입지가 경쟁률을 결정하는 요인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누구나 알 수 있듯, 청약경쟁률에는 당시 부동산 시장의 분위기가 반영된다. 위의 <표>에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하지만 결국 시세는 당시의 높고 낮은 경쟁률이 무색할 만큼 동반상승했으니 청약경쟁률이 모든 걸 보여준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총 세대수가 아니라 일반분양 물량 기준으로 집계한 두 번째 <표>를 보면, 지난 23년간 서울에서 1000세대 넘게 공급된 단지가 불과 10곳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모두 2010년 이후 분양이 이뤄진 곳이다. 2000년대엔 아예 없었다는 얘기다.
군부대를 이전한 자리에 공급한 독산동 롯데캐슬골드파크를 제외하면 전부 정비사업이다. 기존의 아파트나 동네를 부수고 짓는 재건축, 재개발이 아니고서는 서울에서 1000세대 이상 공급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여실히 드러냈다.
예나 지금이나 공급이 부족한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공급이 부족한데 약세장 영향을 받아 경쟁률이 떨어졌다고 미래가 크게 달라질까 의문이다.
오랜 기간 계획을 세우고 그에 맞춰 청약을 준비했다가 운 좋게 당첨이 됐는데, 암울한 전망을 하는 기사들을 보고 지레 겁을 먹어 계약을 포기하는 당첨자들이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