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청구간소화는 보험업계의 숙원 사업입니다. 실손보험 가입자들이 진료나 치료를 받고 나서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관련 서류를 내야 하는데요. 이 과정이 번거롭고 오래 걸리기 때문에 보험가입자가 직접 병원에 방문해 서류를 떼지 않고도 보험사가 병원으로부터 전자 형태로 서류를 받겠다는 것이 '실손보험청구간소화'의 취지입니다.
실손보험청구간소화에 대해서는 소비자 입장에서도 찬반이 갈립니다. 개인의 건강정보를 전자화해 민간기업인 보험사에 제공하는 게 맞느냐는 부분에서 의견이 갈리는 것인데요. 이 문제는 차치하고 이번엔 '중계기관' 문제를 들여다보려 합니다.
실손보험청구간소화를 추진하기 위한 법 개정안이 이번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안건에서 막바지에 제외되면서 제도 개선이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하지만 법 개정이 이뤄지더라도 진짜 난관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중계기관 논란입니다.
실손보험청구간소화의 핵심은 보험금 청구를 위한 종이서류를 전자서류로 대체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과정에서 보험사에 전자서류로 대체된 가입자(환자)의 건강정보를 가공하고 보험사에 전달해야 하는 일을 누군가 담당해야 하는데, 이 역할을 하는 곳을 '중계기관'으로 칭하고 있습니다.
보험업계는 이 역할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건강정보는 민감정보이기 때문에, 개인정보 유출 우려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국가기관인 심평원에 업무를 위탁하는 게 안전하다는 게 이유입니다.
그렇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심평원이 갖고 있는 의료기관과의 연계입니다. 심평원은 현재 9만9000여개 의료기관과 전산망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의료기관의 진료 행태를 조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비해 의료계에서 심평원을 대신해 중계기관으로 내세우고 있는 민간 핀테크업체는 150여개 의료기관과 연계하고 있어 규모 면에서 심평원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실손보험청구간소화에 반발하고 있는 의료계는 그 중에서도 심평원의 중계기관 지정을 가장 문제삼고 있습니다. 보험업계의 주장과 달리 심평원을 통하더라도 추가적인 비용이 필요하다는 것이 첫번째 이유입니다. 현재 의료기관과 심평원 간 전산망은 급여 항목 관리를 위한 것으로, 실손보험금 청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비급여 항목에 대한 관리를 위해서는 별도의 소프트웨어 개발이 별도로 필요해 비용적 손해가 크다는 것입니다. 국가기관인 심평원이 민간영역을 위한 업무를 하는 것이 마땅치 않다는 의견도 덧붙여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료계의 가장 큰 우려는 비급여 과잉진료의 적발입니다. 심평원이 의료기관의 진료 통계를 관리·감독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보험금 청구를 위한 환자의 비급여 진료 실태 통계가 심평원에 모두 제공되는 점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지요. 물론 의료계는 명분상 첫번째 이유와 두번째 이유를 내세우고 있지만, 이러한 속내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심평원 중계기관 지정은 의료계의 동의를 받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결국 실손보험청구간소화는 소비자를 위한 논쟁보다도 보험업계와 의료계 간 이해관계 분쟁으로 번져간 모양새입니다. 실손보험청구간소화가 소비자를 위해 추진이 필요한지, 어느 방법이 가장 소비자의 피해 없이 편의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인지는 논의의 핵심 사안에서 빠져 있습니다. 대신 어느 방법이 어느 업권에 가장 유리한지가 논의의 핵심이고 또 논의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입니다. 결과적으로는 법안의 논의 여부보다, 두 업계 간 합의가 실손보험청구간소화의 추진 여부를 결정짓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2021년 5월 대한의사협회의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보험업법 개정안 폐기 촉구 기자회견. (사진 =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