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설 대기획 송골매 콘서트. 사진=KBS
비엔나 심포닉 오케스트라 프로젝트가 연주한 롤링 스톤스의 '(I Can't Get No) Satisfaction'.
첫 구절의 '핫! 둘! 셋!'처럼 들리는 이 힘찬 응원가 같은 소리가 전국 라디오에서 울려퍼진지 2년이 채 안됐을 때, 저는 영어학원 버스에 앉아 있던 꼬맹이였습니다. 무뚝뚝하게 "광고 듣고 오겠습니다" 하던 철수 아저씨 목소리 중간중간 흘러나오던 팝송에 몸을 기댄 채.
초중고를 거치고 차츰 '음악 귀'가 더 성장할 때 쯤에야 비로소, 줄곧 흥얼거리던 "학교가기 싫은 사람/공부하기 싫은 사람 모여라"를 만든 팀이 철수 아저씨가 몸 담았던 '송골매'란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어떻게 보면, 팝부터 록에 이르기까지, 제 음악의 DNA에 꾹꾹 무늬를 새긴 것은 돌아보니 배철수 선생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송골매의 공연을 본 게 작년이었습니다. 3월 미국 투어(LA, 뉴욕, 애틀랜타)의 출사표이기도 한 이 무대에서, 배철수 그리고 그와 함께 송골매 전성기를 이끌었던 구창모는 왜 이 록 밴드가 산울림과 함께 7080 한국식 그룹사운드의 원형이며, 역사였는지를 여실히 증명했습니다. '새가 되어 날으리(7집, 1987)'에서 모두 일어난 청중들이 제창을 하자, LED 화면에서 날아오르는 송골매의 시점으로 도시를 굽어보는 대목에서 전율까지도 느껴졌습니다.
'조용필과 산울림, 송골매 세대인 부모님과 함께 이 공연을 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취재 차 프레스석에서 혼자 나오며, 너무나 아쉬웠던 기억도 있습니다.
4개월 쯤 뒤였나요. 평소 친분있는 KBS 음악 작가가 연락이 왔습니다. "최근 그 송골매 기사 잘 봤습니다. 저희가 나훈아, 이미자, 임영웅에 이어 설 대기획을 해볼까 하는데..." 요지는 시청률에 대한 우려였습니다. 나훈아처럼 전 세대에 소구하는 게 아닐까봐. 그렇지만 '트로트와 아이돌로 양분되고 있는 현 한국 음악 방송 상황에 이보다 더 좋은 취지가 있겠냐'고 거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40년만의 비행'으로 안방을 찾은 송골매가 6%라는 적지 않은 시청률로 흥행해 기분이 좋았습니다. 저 또한 부모님과 함께 TV 앞에 둥그렇게 앉았지요. 음악은 단숨에 세월을 거스르는 타임슬립이었습니다. 첫 곡의 비행기 모형 무대에서 두 사람이 내려오고, "어쩌다 마주친 그대 모습에"가 흘러나오는 순간부터 주름 진 부모님 입가가 환해지더군요. 부모님과 함께 보는 송골매 공연은 제가 혼자 보고 온 공연과는 100% 달랐습니다. '코펠과 버너를 들고 다니며, 길거리에서 밥을 해 먹고, 디스코 장에서 춤을 췄다'던 부모님의 '그때 그 시절'이 송두리째 제게 오는 경험이었습니다. 송골매가 아니었다면, 이런 부모님의 추억 소환을 제가 쉽게 들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자연스레 들었지요.
최근 거장들이 잇따라 귀환하면서 한국 대중음악의 편향된 장르적 갈증을 해소시키는 흐름은 무척이나 고무적입니다. 송골매 역시 KBS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록부터 포크, 솔로 발라드, 세미 트로트까지 아우른 다양성으로 현재 특정 장르 쏠림의 음악 방송 문화를 타파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올해 송골매에 이어 거장들이 출격 준비를 앞두고 있습니다. '찰나', '세렝게티' 낸 지난해 조용필은 올해 상반기 EP와 하반기 앨범 발표 계획이고, 산울림은 LP리마스터링 연작을 이어갑니다. 45주년 김수철은 경록절에서 크라잉넛과 합동 무대 또한 예고하고 있습니다. 거장들의 귀환이 한국 대중음악 시장에 새 바람을 넣어주고, 세대를 자연스레 통합하는 현상을 또 한 차례 만들어주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