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로 기타와 국악의 결합 장르 '기타산조'를 개발하고 유엔총회 무대에까지 오른 올해 데뷔 45주년의 김수철. 사진=유튜브 캡처
시작은 'K현상'이란 게 과연 실체가 있을까. 분명 문화란 개별 분화된 요소들의 자연발생적인 집합인데, 이것을 인위적인 개념으로 정립한 것이 아닐까. 심지어는 우리의 거대한 환상이나 착각이 아닐까.
최근 K현상에 관한 취재 도중 만난 류웅재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의 말입니다. "최근에는 정부와 기업, 언론의 인위적인 국가주도형 문화정책으로 밀어붙이는 경향이 있어요. 이전의 한류, 최근의 K현상은 그 출발점이 우리 내부가 아닌, 우리 외부의 타자의 인정과 이에 반응하는 내부의 인정욕구에 기인한 측면이 있습니다."
아무리 우리 것을 경쟁력 있는 콘텐츠나 문화상품으로 글로벌 하게 알리는 데 목표를 둬도, "구조적 조건의 성숙이 수반되지 않고 인위적으로 (재)생산하려한다면"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대개 외부의 인정이나 관심에 의존하기 때문에 우리 내부에선 '과대 포장'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입니다.
류 교수는 "한류(韓流, the Korean Wave)가 초기 한국 아이돌 그룹의 공연을 계기로 중국 언론에서 마치 한국에서 밀려오는 파도와 같다는 은유로 이러한 조어를 만들었다"며 "이에 한국 정부와 언론, 기업이 공명하면서 그 존재감이 커진 것과 유사하게, K콘텐츠와 K컬처를 비롯한 K현상 또한 유사한 경로와 전개 양상을 보인다"고 짚습니다.
K팝이나 '오징어게임', '기생충'이 세계 팬들을 감화시킨 지점은 모두 다르게 받아들여져야 하는데, 소위 '국뽕'이라는 이유로 서로 같은 덩어리 취급을 하고, 지나친 일반화를 한다면, 그것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K현상'이란 작용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기 어렵다는 것이죠.
88올림픽부터 2002년 월드컵, 팔만대장경 등의 음악 제작을 담당하고 국악까지 아울러 UN총회에서 '기타 산조' 연주를 펼쳤던 김수철은 최근 본보 기자와의 인터뷰 당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요즘의 K팝에는 우리 것이 너무 없다"고. 결국 김구 선생이 말한 대로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지려면, 뿌리부터 단단해야 하는 것인데, 충분한 성숙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뻗어나가는 문화는 결국 빠르게 식을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해외에서 조금이라도 주목을 받으면 우리나라 언론과 정부는 너무나 떠벌리기가 심해요. 막상 들여다보면 그 예술의 퇴적층이 깊지가 않은데도. 자화자찬만 늘어놓지 말고, 우리가 그래미나 빌보드 같은 음악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나요. 왜 미국 음악상을 받는다고 좋아하죠? 결국은 우리가 어떻게 리드해야할지를 고민해야 해요. 특히 내가 국악에만 몇십년을 매달렸지만, 여전히 지원은 너무나도 열악한 실정이죠. 성격상 포기 못해 내가 여기까지 끌고온 거예요."(김수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