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이치 사카모토. 사진=씨엔앨뮤직
죽는 순간까지도 '삶과 죽음의 경계' 모색한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 주변 평론가들과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그가 남긴 음악 유산은 경계를 뛰어넘는 '코스모폴리탄으로서의 음악가'였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삶과 죽음 뿐 아니라, 시대와 세대를 가리지 않고, 전자음악부터 클래식과 노이즈 실험까지 횡단했으며, 단순히 일본에 갇히지 않는 세계를 향한 음악이었다는 데 의의가 큽니다. 어쩌면, 임종이 다가오는 순간까지도 자신이 남겨야 할 유산에 집중함으로써, 인생과 작별을 덤덤하게 준비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 서점가에 출간된 자서전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는 그가 지난 2007∼2009년 잡지 '엔진'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정리해 묶은 책입니다. 영화음악의 거장으로 명성을 얻은 사카모토가 인생을 찬찬히 되돌아보며 고민과 사유를 풀어냈는데, 생전 그가 남긴 어록들을 보기 위해 국내에서도 열기가 뜨겁습니다.
10대 내내 음악 공부를 이어갔고, 서구권을 넘어 인도·오키나와·아프리카 등 민족음악에도 관심을 기울였다는 그간 세간에 알려지지 않는 면모들까지 나옵니다.
자서전을 통해 자신의 영화음악 대표작 '마지막 황제'에 얽힌 뒷얘기도 들려줍니다. 실은 영화음악 감독이 아닌 배우로 먼저 참여한 작품이었습니다.
극중 제국주의자 아마카스 마사히코 역할을 맡아 당초 할복자살로 돼 있던 대본을 거부하고 권총자살로 바꾸자고 설득했다고 합니다. "할복을 빼든지 나를 빼든지 하라"는 강경한 태도를 보여 결국 대본이 바뀌었습니다. 당장 대관식 음악을 만들어 달라고 한 감독의 요구 덕에 '마지막 황제' OST 작업까지 했습니다. 이 음악으로 아시아 최초 아카데미 작곡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게 됩니다.
한국에서는 위안부나 안보법안에 반대하는 사회 참여 활동을 한 것으로도 특히 유명합니다. 사회 참여 활동에 대해 그는 "나로서는 되도록 범위를 넓히지 않고, 오히려 최대한 좁혀서 음악만 하면서 살 수 있다면 행복할 텐데 어쩌다 보니 다양한 일에 관여하고 다양한 체험을 하는 처지가 됐다. 뭐랄까, 모두 다 내친김에 했다고나 할까"라며 덤덤하게 대답합니다.
자서전 뿐 아니라 한국에서는 5년 전 피크닉이라는 공간에서 연 전시 공간과 2018년 다큐영화 '코다' 등에 관한 글들을 통해 그와 추억을 나눈 글들이 SNS를 국화처럼 수놓습니다. 기획 전시도 곳곳에서 마련 중입니다.
"음(音) 자체의 분위기에도 꽃꽂이 같은 점이 있습니다. 만들어냈다기보다는 그곳에 존재한다는 느낌입니다. 내가 연주한 피아노 소리, 여러 사람에게 연주를 부탁한 악기 소리, 북극권에서 녹음한 자연의 소리... 내가 만들어내는 음악은 인간 세계나 현재의 일과는 조금 동떨어진, 보다 먼 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소리를 가만가만 늘어놓고 찬찬히 바라봅니다."(자서전 내용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