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롱한 전자 비트에 섞여 웅얼대는 한국어로 전 세계를 사로 잡은 음악가. 한국계 미국 음악가이자, 세계에 닿고 있는 DJ 예지(YEJI·이예지·29)가 지난 7일 세계 동시 발표한 첫 정규 음반 'With A hammer'는 예사롭지 않습니다. 망치 캐릭터를 내세워 음악이 사회 현상을 거울처럼 비출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국내 뿐 아니라 피치포크 등 외국 평단에서는 벌써부터 역작으로 보는 분위기입니다.
팬데믹 기간 동안, 뉴욕에서 지내면서 흑인들이 여전히 살해당하고 억압받는 현실, 마스크를 착용했다는 이유로 아시아인들이 표적이 되는 현실에 대한 분노를 음표로 그려냈습니다.
앨범 전체를 두르고 있는 망치 캐릭터는 최근 한국에서 젊은 세대 사이 뜨고 있는 '스트레스 방'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무거운 망치로 사회의 분노와 억압을 뭉개버리고, 그 거울 앞에 선 자신을 우물처럼 들여다봤다고. 사회에 대한 분노와 갈등에 대한 생각이 결국 가족 간 사랑으로 수렴했다고 합니다.
사실, 예지는 한국보다 해외에서 먼저 알아본 한국계 음악가입니다. 제가 처음 본 건 2017년 글로벌 언더그라운드 음악 방송 '보일러 룸'에서 유튜브로 생중계된 디제잉입니다. 이 영상이 생중계되자 세계 힙스터들이 들썩였습니다. 영상에는 아직까지도 '지구상 가장 쿨한 사람', '한국에서 신이 왔다'는 댓글들이 달립니다.
이듬해 영국 공영방송 BBC는 "전례가 없던 음악"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주목할 만한 신인(사운드 오브·Sound of 2018)'으로 거론하며 '괴물신인' 빌리 아일리시와 같은 줄에 그를 배열했습니다. 카네기 멜론대의 개념미술 전공자며 취미로 음악을 시작했다는 점도 흥미로워했습니다.
BBC는 2003년부터 해마다 유망한 신인들을 선정해 왔는데 대체로 적중했습니다. 매년 말 음악 비평가들과 업계 종사자들의 투표로 '사운드 오브'를 산출합니다. 올해 예지는 블랙핑크와 같은 날, 미국 최대 대형 음악 축제인 '코첼라 뮤직 페스티벌' 무대에 서고, 월드투어도 돕니다.
서태지와 이정현의 음악을 떠올리며 세기말 한국의 인디 록, 일렉트로니카를 담은 이번 음반을 들고서.
관련해 진행한 첫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첫 정규 음반의 의미를 묻자 신중했습니다. 오래 걸린 이유는 "지금까지 제가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무엇이 앨범이고 무엇이 앨범이 아닌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는 없지만, 적어도 앨범을 만들때는 제가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작업 방식은 음악적으로 배운 것과 제가 느낀 감정을 그 순간에 진지하게 몰입해서 쏟아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체의 그림을 예상하거나 각 트랙을 계획하거나 한 가지 꾸준한 의도를 고수하는 것이 어려웠어요. 이번 [With A Hammer]의 경우는 먼저 전체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를 따라 앨범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음악계 코스모폴리탄' 행보를 이어갈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