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지난 16일 국회 중앙현관 입구를 점거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국회 앞 계단에서 열린 전세사기ㆍ깡통전세 특별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 참석자들이다. 회견은 전세사기깡통전세피해자전국대책위, 전세사기깡통전세문제해결을 위한시민사회대책위가 주최했다.(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윤혜원 기자] 지난 16일 오전 10시 15분경, 민주당 원내대책회의 백브리핑(비공식적으로 이어지는 브리핑)이 국회 본청 원내대표회의실에서 열리던 중이었습니다. 회의실 너머로 희미하게 고성이 들렸습니다. 백브리핑이 끝난 뒤 무슨 일이었는지 파악할 수 있었는데요.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국회 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 뒤 ‘서명지를 전달하겠다’며 본청에 들어오려다 출입이 막히면서 약간의 소란이 일었던 겁니다.
그날은 국회 본청에서 국토교통위원회 국토법안심사소위가 열리는 날이었습니다.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기 위해 여야가 만나 회의를 연 거죠. 피해자들은 이날 회의가 끝날 때까지 본청 주변에서 연좌 농성을 이어갔습니다. ‘제대로 된 특별법 제정하라’와 같은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든 채였죠. 전세사기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처럼 피해자들이 국회로 향한 까닭 가운데 하나는 시간에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야가 처음으로 전세사기 대책 관련 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한 시점은 지난달 21일이었습니다. 당시 국민의힘, 민주당, 정의당 정책위의장들은 회동 후 이렇게 결론 내렸다고 밝혔죠. 조속한 입법의 필요성에 공감한 결과입니다. 이에 지난달 27일 본회의에서 이와 관련한 두 개 법안은 처리가 됐죠.
그러나 전세사기 특별법 처리는 좀처럼 진척이 안 나는 상황입니다. 여야는 지난 1일, 3일, 10일, 16일에 걸쳐 네 차례 만나 전세사기 특별법 제정을 두고 논의했습니다. 하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죠. 피해자 범위와 구제 방법 등 쟁점에 대해 합의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민주당 등 야권은 이 쟁점들을 놓고 실효성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단일안을 제시했는데요. 정부여당은 야권의 단일안을 검토해 오는 22일 소위에서 특별법을 재논의하기로 했습니다.
여야가 이견을 좁히지 못하는 동안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있습니다. 지금껏 전세사기로 세상을 등진 피해자만 4명입니다. 여야가 특별법을 놓고 씨름하던 중인 지난 11일에는 서울 양천구의 피해자가 숨졌습니다. 전세사기 해결책으로 제시된 특별법 제정이 지지부진하자 피해자 고통만 커지는 상황입니다.
여야는 오는 25일 본회의를 열고 전세사기 특별법을 처리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오는 22일 소위에서 여야가 견해차를 해소하지 못하면, 25일 특별법 통과 전망은 밝지 않을 수 있습니다. 특별법 내용도 중요하지만, 속도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때입니다. 더는 부당한 일로 절망하는 사람이 없도록 정치권은 속히 실낱같은 희망이나마 보여줘야 합니다.
윤혜원 기자 hwyo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