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얘 너 살 빠졌다"
오랜만에 나간 동창회에서 엄마가 친구들에게 들은 얘기랍니다. 저한테까지 전화해서 자랑하시는 걸 보니 엄마가 기분이 상당히 좋은 모양입니다. 즐거움도 잠시, 엄마가 심각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너 살 빼야 해!"
짧은 정적이 흘렀습니다. 질문에 대한 제 반응이 영 마뜩잖았는지 엄마는 한숨을 내쉬다 훈계를 이어갑니다.
"여자는 살 찌면 안 돼, 항상 날씬하고 예쁘게 관리해야지"
요즘 살 찐 딸이 걱정인가봅니다. 추레하게 운동화에 티셔츠 쪼가리나 걸치고 다니는 것도 영 마음에 안 든답니다. 엄마를 만족시켜줄 대답을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에 대충 얼버무리다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런데요. 날씬하지 않은 딸을 걱정하는 엄마, 그리 낯설지 않은 모습 아닌가요?
다이어트 식품은 편의점에서도 어렵지 않게 구매할 수 있다. (사진=뉴시스)
WHO(세계보건기구)가 1990년부터 2022년까지 전세계 200개국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다른 국가의 성인 저체중 유병률은 감소한 반면, 한국의 경우 같은 기간 저체중 여성이 2% 이상 증가했다고 합니다. WHO는 논문에서 "적정한 체중은 건강의 기본적인 요건이고 심한 저체중은 성장발달에 해롭다"며 우려를 표했는데요. 한국 여성의 저체중률이 증가한 데에는 유독 여성의 외모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한국문화도 한몫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살 찐 여성은 자기관리 못 하는 게으른 사람, 아름답지 않으면 여성으로서 가치가 없다는 메시지가 의심의 여지 없이 당연히 각인되는 사회, 마음이 무겁습니다.
저는 다이어트 안 할 겁니다. 건강을 해칠 정도로 비만해지지는 않아야겠지만, 더는 미용을 목적으로 한 다이어트는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물론 저도 미련하리만큼 외모에 집착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간만에 만난 지인에게 "너 살 좀 쪘다"는 소리를 들으면 열받고 우울해 하던, 조금이라도 체중이 늘면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던 때가 있었네요.
그때 저는 월급의 대부분을 꾸밈 비용으로 쓰고 오늘은 무슨 옷을 입을까 고민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예쁜 옷을 입기 위해선 그 옷을 소화할 수 있는 예쁜 몸매가 필수이므로, 매끼니 뭘 먹었는지 기록하고 하루 최소 3시간 고강도 운동을 했습니다. 정해진 양의 음식을 먹고 운동 할당량을 채워야만 안심하고 잠에 들 수 있었습니다. 극심한 저체중으로 수족냉증과 빈혈에 시달리면서도 오랫동안 다이어트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은 못 했습니다. 그렇게 다이어트 강박으로 고생하다 폭식의 늪에 빠지더니 고도비만 환자가 되더군요. 규칙적인 식습관과 꾸준한 운동으로 다행히 지금은 표준체중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간 수치, 콜레스테롤이 회복됐고 손발도 많이 따뜻해졌고요. 몸이 편해지니 마음도 편안하고 삶의 여유도 제법 생겼어요.
비록 전처럼 예쁜 옷을 입을 수는 없지만, 미용체중은 아니지만, 외적 매력은 떨어졌지만 저는 건강한 신체에서 우러나오는 에너지로 꽉 채워진 지금의 제가 좋습니다. 아름답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세상이 전보다 제게 따듯하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만(농담) 그래도 저는 이대로 살렵니다. 이렇게 사는 게 좋습니다.
저는 다이어트를 끊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