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 썰]
토마토는 유혹의 열매였다?
토마토는 한 때 유럽에서 ‘사랑의 사과(pomme d’amour)’로 불리면서 숱한 오해를 낳았습니다. 토마토의 원산지는 남미로 현재 멕시코의 아즈텍인들이 처음으로 재배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토마토는 원래 ‘속이 꽉찬 과일’을 의미하는 토마틸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16세기 스페인 정복자들이 이 토마토를 유럽 대륙으로 가져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토마토는 ‘토마토’였습니다. 오늘날에도 대부분 나라에서 이렇게 불리죠.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토마토를 ‘뽀모도로(pomodoro)’라고 합니다. 이 단어의 유래는 ‘황금사과(pomo doro)’인데요, 이 같은 이름이 붙은 이유가 토마토의 색깔 때문이다, 발음 때문이다, 의견이 분분합니다. 일각에서는 스페인에서 이탈리아와 북아프리카로 퍼진 최초의 토마토 품종이 노란색이었기 때문에 황금 사과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사과라는 번역도 잘못됐습니다. 중세 유럽에서 ‘뽀모(pomo)’는 사과가 아닌 과일을 뜻했습니다. 실제로 라틴어로 과일을 ‘Pomum’이라고 했는데 훗날 이 뜻이 사과로 굳어졌습니다.
또 다른 이야기는 ‘무어인의 사과(pomo dei mori)’라는 말이 뽀모도로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토마토는 유럽에 소개된 이후 관상용으로만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다 이베리아반도와 북아프리카에 살았던 이슬람인 무어인들이 이 과일을 먹기 시작했는데, 이 때문에 이탈리아에서 포모 데이 모리(pomo dei mori) 즉 무어인의 사과로 알려졌습니다. 훗날 이 단어가 발음이 비슷한 뽀모도로(pomo doro)로 바뀌었다는 설입니다. 또 발음이 프랑스어로는 ‘뽐다무르(Pomme d’amour)’와 비슷해 사랑의 사과라고 알려졌다고 합니다.
이름 때문에 토마토에 성적 흥분을 일으키는 최음제 성분이 있다는 낭설이 퍼지기도 했습니다. 또 마녀의 식물로 알려진 맨드레이크(히브리어로 ‘사랑의 식물’)과로 분류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로마 카톨릭 교회나 청교도인들이 토마토를 금지했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한 사실처럼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종교적으로 토마토를 금지했다는 사실은 공식적 기록으로 확인된 바가 없다고 합니다.
토마토가 이탈리아에 처음 소개되고 150년이 지난 1694년, 이탈리아의 요리책 ‘현대식 집사: 연회를 잘 준비하는 법’에 드디어 토마토 요리가 등장합니다. 이 때의 레시피는 그을린 토마토와 다진 양파, 칠리, 타임, 소금, 오일, 식초로 만든 살사였다고 합니다. 오늘날 멕시코 치와와주에서 먹는 살사와 매우 비슷한 형태입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는 토마토가 식재료로 쓰였지만 신대륙인 미국에서의 사정은 달랐습니다.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토마토에 독이 들어있다는 잘못된 믿음이 만연했죠. 이는 유럽의 귀족들과 얽힌 근거 없는 이야기 때문입니다. 당시 토마토를 먹은 유럽 귀족들이 줄줄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유럽 귀족들은 주석과 납을 합금해 만든 백랍 접시를 사용했는데요, 토마토의 산이 백랍 접시를 녹여 납중독을 일으켜 사망했다고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백랍에서 나온 미량의 납으로 사망에 이르게 할 확률은 매우 적다고 합니다. 또 레몬 등 산성이 강한 다른 음식들도 비슷한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이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토마토의 누명은 1820년 뉴저지 세일럼에 살던 한 남성 덕에 벗겨졌다고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이 일화에도 거품이 많이 껴있습니다. 1946년에 출판된 ‘미국 역사에서 사라진 사람들(Lost Men of American History)’에 따르면 로버트 기번 존슨이라는 원예사가 법원 앞에서 토마토를 씹어먹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고 합니다. 지켜보던 군중들은 그가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는 멀쩡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토마토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이 풀리고 미국의 토마토 재배 산업이 싹텄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미국 CBS 라디오의 한 쇼에서도 재연하며 큰 인기를 끌었죠. 뉴저지는 오늘날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토마토 생산지 중 하나입니다.
문제는 존슨이 실존 인물이긴 하나 그와 토마토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적다는 것입니다. 세일럼의 우체국장이자 아마추어 역사학자인 조셉 시클러가 지역에 대한 관심을 끌기 위해 사건이 일어난 지 100년 후에 이야기를 꾸며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사실 토마토를 대중화한 공로는 로버트 기번 존슨이 아닌 한 돌팔이 의사에게 있습니다. 1834년 존 쿡 베넷이라는 의사는 유럽을 여행하면서 토마토가 설사와 소화불량을 치료하고 콜레라를 예방한다는 사실을 목격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게 ‘토마토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고 가짜 약장수가 토마토 추출물을 콜레라와 매독을 치료하는 만병통치제로 둔갑해 팔기 시작했습니다. 토마토가 건강에 좋은 건 사실이지만 전염병까지 막을 수는 없죠. 그렇지만 이를 계기로 토마토가 본격적으로 산업 작물로 재배되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