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가 주는 따듯함이 있습니다. 필름 카메라, LP판 등 다양한 매체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비디오테이프를 가장 선호합니다. 비디오가게를 운영하셨던 아버지 덕분입니다. 유년시절 집에 돌아오면 비디오테이프로 만화영화를 즐겨보던 기억이 선명한데요. 수많은 만화영화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바로 <월레스와 그로밋-전자바지 소동>(1997)이었습니다.
<월레스와 그로밋-복수의 날개> 중 인공지능(AI) 로봇 노봇이 등장하는 장면. (사진=아드만 스튜디오)
월레스와 그로밋 시리즈는 점토(클레이)를 활용한 스톱모션 방식으로 만들어지는데, 제작 기간이 오래 걸리기로 유명합니다. 애니메이터 한 명이 일주일간 촬영한 분량이 4초대였다고 합니다. 정말 비효율적이지만, 이 시리즈만 주는 특유의 감성은 많은 시청자를 사로잡았는데요. 16년 만에 넷플릭스에서 속편을 발표하면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3일 공개된 <월레스와 그로밋-복수의 날개>는 발명가 월레스가 만든 (AI) 로봇 ‘노봇’을 동물원에 수감된 페더스 맥그로가 해킹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습니다. 노봇의 핵심 프로토콜을 ‘선함’에서 ‘악함’으로 해킹하면서 월레스는 곤경에 빠지는데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강아지 그로밋이 나서게 됩니다.
이번 시리즈의 주제는 ‘AI시대에 전하는 경고’로 읽힐 수도 있지만, 애니메이션의 재치를 잃지 않았습니다. 월레스가 만든 기발한 발명품과 곳곳에 등장하는 유머는 재미와 따스함을 선사합니다.
특히 이번 시리즈가 지닌 따스함은 마지막 장면에서 절정을 맞이합니다. 초반부 월레스는 자신의 발명에 취해 월레스를 쓰다듬는 일마저 ‘토닥토닥 기계’로 대신했는데요. 하지만 월레스는 ‘노봇 소동’을 겪고 나서야 그로밋의 소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월레스는 그로밋에게 사과하며 말합니다. “하지만 세상엔 기계로 못 하는 일도 있지”.
AI가 보편화된 시대, ‘아날로그’ 애니메이션이 주는 따스함이 더 큰 울림을 줍니다. 어릴 적 모습과 달라진 게 없는 월레스와 그로밋을 보며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가치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이명신 인턴기자 si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