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덕훈·박혜정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남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가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철통 보안 속에서 1박2일간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출국했습니다. 짧은 체류 기간 동안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막후 실세’로 거론되는 그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한 재계 총수들의 움직임도 분주했습니다. 상호관세 유예와 대미 투자 확대 등을 두고 대화가 오갔을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이번 방한이 국내 기업과 트럼프 일가 중 누구에게 ‘선물 보따리’가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지난 30일 오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가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1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주니어는 이날 자정을 지나 전용기 편으로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지난 29일 입국한 그는 30일 하루 동안에만 국내 10~30대 그룹, 중견기업 총수 및 최고경영자(CEO) 20여명과 릴레이 면담을 가졌습니다. 오전 7시부터 시작돼 저녁까지 12시간 가량 이어진 면담은, 30분에서 1시간 단위로 쪼개서 진행됐습니다. 장소는 서울 강남의 조선팰리스 호텔 내 별도 보안구역으로, 외부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됐습니다.
오전 8시께 이뤄진 면담에는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 김동선 한화갤러리아·호텔앤드리조트 미래비전총괄 부사장이 참석했습니다. 경영권 승계가 이뤄지고 있는 시점에서 이들 삼형제가 한 장소에 나타난 것 자체가 이례적이었습니다. 이 중 장남인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은 이날 오후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을 찾을 예정이었던 존 펠란 미 해군성 장관을 만나기 위해 현지로 곧장 이동했습니다.
이날 이재현 CJ그룹 회장, 허용수 GS에너지 사장, 양종희 KB 회장, 조원태 대한항공 회장, 구자은 LS 회장 등도 트럼프 주니어에게 명함을 건넨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밖에도 최근 이사회로 복귀한 네이버 창업자 이해진 의장과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부사장)도 호텔을 찾았습니다. 네이버 관계자는 “이 의장과 트럼프 주니어가 AI, 테크, 글로벌 진출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고 상호 협력에 대한 긍정적인 대화를 나눴다”고 했습니다. 신 실장은 미국에 진출한 석유화학·바이오 등 사업 부문 전반에 대한 협력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30일 오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와 국내 재계 총수들 사이의 릴레이 면담이 이뤄진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 호텔 출입구에 기자들이 모여 있다(사진=뉴스토마토)
비공개로 진행돼 구체적 논의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대미 투자 확대, 한미 간 경제 협력, 미국 관세 정책 완화 등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 기준 2천억달러(약 285조원)에 달하는 한미 간 교역 규모를 고려할 때 상호관세 부과가 양국 경제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전달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주니어가 한국 내 사업 기회나 한국 기업의 투자를 타진했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종일 릴레이 면담을 이어간 트럼프 주니어는 이날 저녁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과의 만찬을 끝으로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그와 친분이 두터운 정 회장 초청으로 이뤄진 이번 방한은, 트럼프 행정부와의 연결 고리를 마련해 달라는 재계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당초 만남이 예상됐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면담 여부는 끝내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해외에 체류 중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날 면담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철저히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회동이 이뤄졌을 것으로 본다”며 “향후 트럼프 행정부와 국내 기업들이 어떤 제스처를 취하느냐에 따라 이번 회동으로 덕을 본 게 누구인지 드러나지 않겠냐”고 했습니다.
배덕훈·박혜정 기자 paladin7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