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N번방 추적단 불꽂’으로 알려진 박지현 씨가 더불어민주당의 공동 비상대책위원장에 ‘발탁’됐다. 비대위원장은 당 대표다. 그래서 보통 비대위원장이라고 하면 정치 현장을 잘 아는, 경륜을 갖춘 사람을 ‘삼고초려’하는 경우가 많은데 박지현 위원장의 경우 ‘삼고초려’라기보다는 ‘발탁’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실력의 문제로만 봤을 때도 박 위원장이 대체 한국 정치에 대해 어떤 역사적 지식을 갖고 있는지, 정부 조직에 대해서, 정당에 대해서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조차 우리는 알 수 없다. 어떻든 민주당은 그런 박 위원장을 무려 비상대책위원장이라는 감투를 씌웠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박 위원장을 선임하게 된 배경에는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소위 ‘이대녀(20대 여자)’들의 막판 결집으로 이재명 상임고문이 선전했다는 분석이 근거다. 하지만 검토해야 할 내용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비호감 선거의 마침표를 찍은 이대녀의 선택
많은 언론 보도와 여론조사를 근거로 살펴보면 마지막까지 20대, 특히 이대녀의 표심은 정확하게 잡히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대남(20대 남자)’의 상징처럼 되어버린_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연이어 여성과 관련해 과도한 표현을 사용하면서 막판에 이재명 상임고문으로 표가 결집됐다. 그래서 민주당은 이번 기회에 이대녀를 붙잡아 보겠다는 심산, 혹은 청년들에게 주도권을 주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박지현 씨를 비대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겼다.
이대녀의 선택은 이재명 상임고문에 대한 호감이 아니다. 국민의힘이 내세운 여성정책에 대한 반감 및 비호감이 작용해서 대안으로 선택했을 뿐이다. 이를 증명하는 것은 선거가 끝난 후 심상정 정의당 대표에게 쏟아진 후원금이 말해준다. 개표 전후로만 12억 원이 쏟아졌다. “심상정 후보를 찍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의사표시였다. 민주당의 착각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선거 막판 이대녀의 선택은 이재명 상임고문은 물론이고 더불어민주당의 능력, 그리고 호감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정의당 떠난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심상정 후보는 제19대 대선에서는 200만 표를 득표했지만 이번에는 80만 표에 그쳤다. 무려 120만 표가 증발했다. 그동안 정의당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지난 2020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비례대표 공천과정에서 청년과 여성, 장애인 등에 중복해서 가산점을 부여하면서 실제 득표율은 10위권 바깥에 있던 장혜영, 류호정 의원이 비례 순번 1,2번을 받으면서 국회에 진입했다. 정의당은 페미니스트 정당을 표방했고, 한국에도 본격적인 ‘정체성 정치’가 개막됐다.(정체성 정치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따로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소위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페미니스트 정당의 출연과 대비하여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를 공격하고는 한다. 이 대표가 남녀를 갈라친다는 논리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그 반론으로는 ‘양성평등’이라는 보편성을 뒤로 하고 ‘페미니즘’을 앞세우는 것이야말로 남녀를 갈라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나온다. 이런 논의와는 별개로 정의당의 현실은 심상정 후보의 2% 득표율이 말해준다. 페미니즘 이외의 노동, 환경, 인권, 평화, 안전 등 무수한 가치는 묻혀버렸다. 많은 정의당 지지자들이 고 노회찬 의원을 수시로 소환하는 것은 과연 ‘페미니스트 정당’과 무관한 것일까? 5년 사이에 무려 120만 표가 증발했다. 그리고 정의당은 후원금 12억 원은 쏟아졌지만 당은 몰락 직전의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게 페미니스트 정당을 추구했던 정의당이 받아 든 결과물이다.
그리고 정의당으로 갔던 이대녀들이 박지현 비대위원장을 따라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고 있다. 공식적인 숫자는 없지만 언론보도에 따르면 2만 명, 혹은 10만 명이라는 언급도 나오고 있다. 과연 이 상황이 더불어민주당에게 반가운 상황일까? 당원 숫자가 늘어나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다만 정의당의 현재 모습을 보라고 말하고 싶다.
이대녀는 꾸준히 민주당을 버리고 있었다
민주당은 이번 결과를 놓고 마치 엄청나게 선전한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이재명 상임고문이 민주당 계열 후보 중에서 역대 최다 득표를 했다는 이유로 우상화를 하고 있는 모습은 남사스럽다. 앞선 글에서 자료를 근거로 말했듯이 이재명 고문은 민주당 계열 후보 중에서 득표율 꼴찌다.)
어떻든 막판에 여성표가 집결한 것은 민주당 입장에서는 고무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승부를 뒤집지는 못했다. 또한 심상정 후보한테 가야 할 표가 막연한 공포심(여성가족부 폐지 등)으로 이재명으로 집결했다. 다시 말하지만 승부를 뒤집지는 못했다. 그리고 20대 여성은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에 대해 69%라는 압도적 지지를 보낸 이후 꾸준히 하락했다.
위의 자료를 보면 이재명 후보의 58%가 2017년 문재인 후보 56%보다 높지만, 2017년 수치는 20대 남녀 합산 비율이다. 남성 지지율이 여성보다 적게는 7%, 많게는 15%까지 차이 나는 점을 감안하면 2017년 20대 여성 지지율도 60%를 상회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그리고 위의 표가 시사하는 바는 2012년을 정점으로 꾸준히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대로 국힘당의 20대 여성 지지율은 상승하고 있다. 비록 윤석열 후보의 33.8%라는 수치가 상대적으로는 작지만, 이 숫자는 국민의힘 계열 후보로서는, 심지어 2012년 박근혜 후보의 30.6%를 넘어서는 수치다.
이재명도 여성가족부 폐지 입장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박지현 씨를 비대위원장에 발탁하면서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며 여성가족부 폐지를 추진하는 윤석열 당선인을 향해 각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과연 싸움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이재명 상임고문은 지난해 11월 10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당시 이재명 후보는 사실상 이대녀는 포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대남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홍준표 의원을 지지하던 이대남은 홍 의원이 경선에서 탈락하자 윤석열 후보 대신 이재명을 찍겠다는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재명 후보의 측근인 김남국 의원은 남초 커뮤니티인 펨코에 글을 올리기도 했고, 이재명 후보 본인도 펨코 글을 공유하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이재명 후보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고민, 고민 끝에, 여성가족부 폐지하자, '여성' 자 들어가니까, 그런 거잖아요. 그런 얘길 해서, 제가. 여성의 입장에서도, 여성이라서 특별히 배려 받는다는 기분이 그리 좋진 않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평등하게 대접받으면 되지, 여성이니까 더 우대, 이걸 바라진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이걸 성평등, 여성·남성 하지 말고. 성평등 가족부 또는 평등가족부. 평등은 남녀에만 있는 건 아니니까. 평등가족부로 이름을 좀 바꿔서 배려하자는 얘길 했는데 갑론을박이 좀 벌어지고 있는 것 같긴 하다.”
더불어민주당과 박지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과 윤석열 당선인이 추진하는 여성가족부 폐지를 남녀 갈라치기라고 말한다. 그리고 폐지 입장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과 박지현 비대위원장은 자기모순을 피하기 위해 2021년 11월 10일 이재명 후보의 여성가족부 폐지 발언을 먼저 넘어서야 한다. 넘어설 수 있을까? 명백히 해놓은 말이 있는데?
안티 페미 성향의 이재명 지지층과 박지현은 공존이 가능할까?
더불어민주당은 정의당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갈등을 극복하고 파멸을 모면할 것인가? 이재명의 강력한 지지층은 안티 페미니즘 성향이다. 김어준, 김용민, 이동형 등 소위 거대 스피커들의 공통 성향이다. 심지어 김용민과 이동형은 민주당 내 페미니스트 국회의원들의 불출마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들 방송은 숱한 여성혐오와 조롱, 음담패설로 유명하다. 그리고 이재명을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로 밀어올리는 데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이재명의 대선 패배 일등공신들이기도 하다.) 이들은 정의당이 페미니스트 정당을 지향해서 망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불어민주당이 페미니즘을 내세우는 데 강하게 반발했던 집단이다. 지금 당장은 대선 패배 직후이고, 이대녀들이 선거 막판 판세를 박빙으로 만든 공로가 있어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향후 관전 포인트는 페미니즘을 기치로 영입한 박지현 비대위원장과 안티 페미 성향의 기존 이재명 지지 그룹이 공존할 수 있을 거냐는 거다. 지금 박지현을 필두로 민주당에 입당하고 있는 이대녀들은 민주당을 페미니스트 정당으로 만들겠다는 투지를 불태우고 있다.
내가 미리 예측하자면, 이들의 결전을 멀지 않았다. 공존은 불가능하다. 그런 순간이 오는 날 더불어민주당에는 엄청난 파열음이 생길 것이다. 그 파열음이 만들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는 알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누군가는 당을 이탈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 모든 시작은 어떤 정치 철학이나, 장기적인 안목이 아닌 매 순간 순간의 지지율에 집착하는 이재명식 포퓰리즘 정치다. 이재명 지지 그룹은 벌써 ‘진짜 페미니즘’과 ‘가짜 페미니즘’ 운운하고 있다. 페미니즘에 대해 공부는 하나도 안 한 흔적이 역력한 40~50대의 소위 ‘개저씨’들 사이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