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입장부터 밝혀 놓고 글을 쓰겠다. 나는 ‘수사와 기소 분리를 찬성한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한다는 말은 검찰이 수사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즉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배제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소위 ‘검수완박’(난 이런 식의 말장난을 싫어한다. 재미도 없고, 시민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가져다주는 정책을 장난처럼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에 찬성하는지를 물어본다면, ‘조건부 찬성’이다.
지금의 검수완박에 동의하지 않는 다섯가지 이유
첫째, 절차와 내용에 문제가 있다. 지금 민주당은 양향자를 비교섭단체로 내세우려다 양향자가 민주당 방안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자 민형배를 탈당시켜 대신 투입하려고 한다. 2020년 총선 당시 위성정당을 만들었듯이 대놓고 꼼수를 쓰겠다는 의미다.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신경쓰지 않고 밀어부치겠다는 의지다. 민주주의는 형식적 절차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형식을 만들기 위해 편법을 쓰라는 의미는 아니다. 유권자들이 뻔히 지켜보는 앞에서 편법과 꼼수를 쓰는 배짱은 대체 어디에서 나왔는지 그저 대단하다는 생각만 든다.
둘째, 이런 꼼수를 사용해야 할 정도로 민주당이 추진하는 법안이 대단한가?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검찰에 맡겨 놓은 6대 범죄 수사권은 문재인 정부에서 법무부(검찰)과 행안부(경찰)의 협의를 거쳐 만들었다.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도 만들었다. 입범 과정에서 민주당도 동의했다. 6대 범죄에 대한 수사권을 검찰에 남겨 놓을 때는 그 이유가 있었다. 지금 검찰 등 검수완박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수사 공백과 경찰의 비대화 등이다. 정상적이었다면 6대 범죄 수사권을 박탈할 경우 이 범죄를 어디에서 처리할지 대안을 만들었을 것이다. 민주당은 이미 대안을 갖고 있다. ‘수사청’과 ‘기소청’ 설치다. 그런데 지금 추진하는 검수완박에서는 대안을 빼놓고 있다. 그냥 검찰 수사권 박탈에 눈이 멀었다. 이건 정상적인 입법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기소청과 수사청 설립 법안을 동시에 추진한다면 민주당은 대의명분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럴 시간도 없다.
셋째, 영국의 명예혁명과 프랑스 혁명, 미국독립전쟁 등을 거치며 근대민주주의 국가가 성립되는 역사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권력 독점의 해체’다. 프랑스 루이 16세는 권력 독점을 포기하지 않았다가 목이 잘렸고, 영국 왕실은 ‘존재하되 군림하지 않는다’는 타협으로 살아남았다. 이른바 몽테스키외의 ‘권력분립론’을 비롯하여 영국의 ‘입헌군주제’조차 권력의 독점을 해체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미국은 심지어 국가 자체를 연방제를 채택해 비대한 권력의 등장을 원천적으로 봉쇄했고, 대부분의 국가는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간 견제와 균형이라는 원리를 도입해 권력의 독점을 해체했다. 오늘날 서구식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비민주주의 혹은 반민주주의 체제의 근본적인 차이는 바로 ‘권력의 독점 여부’에 있다. 이 원리에 의하면 지금 민주당이 추진하는 검수완박은 근대 민주주의 국가가 추구했던 권력의 분점, 권력 독점의 해체와는 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검찰 수사권을 박탈하면 그 수사는 경찰이 할 수밖에 없다. 이게 권력 독점이 아니면 무엇인가? 황운하는 ‘수사의 증발’이라는 표현으로 교묘하게 본질을 흐트린다. ‘수사의 증발’은 ‘범죄의 증발’인가? 그렇지 않다. 현재의 검수완박이 문제인 이유는 범죄는 그대로 존재하는데 수사만 증발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경찰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최소한의 지적 양심을 내다버린 망발이다. 범죄 피해를 입고 있는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는 발상이다.
넷째, 우리는 이미 오랫동안 경찰국가를 경험했다. ‘순사’라는 표현은 공포 그 자체였다. 우리들의 부모님과 조부모님들은 경찰이 나타나면 머리를 조아리고 허리를 굽히며 살았다. ‘민중의 지팡이'로 두들겨 맞고 살았다. 그 역사가 불과 1987년 민주화로 겨우 종식됐다. 지금으로부터 35년이다. 영국의 존 액턴경이 남긴 유명한 말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고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는 말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절대 진리에 가깝다. 권력은 훌륭한 사람도 폭군으로 만들고 망가뜨린다.
다섯째, 검찰 수사권을 박탈하고 경찰에 권한을 몰아준다고 치자. 그 경찰 권력을 운용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윤석열이다. 검사들은 사표 내면 변호사를 할 수 있어서 외부 압력에도 버틸 수 있는 힘이 있었고, 또한 내부에서 소신있는 목소리도 낼 수 있지만, 경찰은 그냥 직업인이다. 아니꼬와도 먹고 살기 위해서 조직에 붙어 있어야 한다.(이건 경찰 비하가 아니라 현실이다) 윤석열 정권이 마음 먹고 경찰을 정권의 하수인으로 만들려고 작정하면 불가능할까? 그럴 경우 경찰은 민주당에게는 정말 공포스럽고 절망적인 권력이 될 수도 있다. 불가능하다고 보나? 경찰은 민주당 편을 들어준다는 믿음이라도 있나? 경찰 권력을 견제하는 장치도 없이 입법을 밀어부치는 이유에 합리성을 찾아볼 수 없다. 근대 민주주의 국가 성립 이후 ‘권력의 분할’은 인권 보호를 위한 기본 장치다. 지금 민주당은 감정이 앞선 개혁 탈레반들과 개혁근본주의자들에게 휘둘려 망하는 길을 걷고 있다.
민주당은 이미 검수완박의 딜레마에 빠져버렸다
알아본 바로는 검수완박에 대해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그럼에도 검수완박은 당론으로 채택됐다. 민형배 탈당이라는 꼼수까지 동원하고 있다. 국민들 보기에 민망한 상황까지 감수하고 밀어부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수사와 기소의 분리’라는 뻔한 이야기는 앞에서 했으니 제외하고 보자.
정치적 득실을 따져보자. 지금 민주당은 개혁 탈레반에게 포위되어 있다. 당내 정치로 보면 검수완박에 발벗고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검수완박에 미온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면 곧바로 ‘수박’ 소리를 듣는다. 문자폭탄을 받는다. 욕설이 날라든다.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서는 검수완박에 찬성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민형배처럼 돌격대가 되어야 한다. 즉 지금의 검수완박 강행은 당내 정치용이라는 이야기다.
검수완박을 밀어부칠 경우 지방선거에 미치는 영향은 어떻게 될까? 부정적이다. 중도층은 균형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명박이 2008년 총선 압승 후에 독주를 하자 내다버렸고, 2016년 박근혜가 진박 중심으로 권력을 독점하자 역시 내다버렸다. 중도층은 균형을 잡는 사람들이다.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치면 반대쪽을 지지해서 균형을 맞춘다. 지금 180석 채워서 검수완박 밀어부치는 민주당의 행태는 중도층을 반대편으로 밀어버린다. 균형을 잡아야 하니까.
지금 민주당은 검수완박이 성공해도 문제, 실패해도 문제, 중도포기해도 문제다.
먼저 가장 최악은 중도 포기다. 목적 달성에도 실패하고, 개혁 탈레반들의 쏟아지는 비난을 받아야 한다. 견딜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중도 포기는 존재할 수 없는 카드다. 밀어부쳐서 성공하든가, 실패하든가 해야 한다.
다음으로 나쁜 상황은 검수완박에 실패하는 경우다. 국회 본회의 통과에 실패하거나, 본회의는 통과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경우다. 이 상황은 민주당에게 악몽이다. 목적 달성에도 실패하고, 민심도 떠나고, 지방선거 패배로 직결된다. 중도 포기보다는 낫지만 기다리는 후폭풍은 끔찍하다.
그나마 민주당에게 가장 나은 경우는 검수완박에 성공하는 것이다.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 지방선거가 망하든, 그래서 당이 쪼개지든 그 문제는 그 다음 문제고 당장의 폭풍은 피할 수 있다. 그래서 그나마 낫다는 이야기지 결코 긍정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민주당이 상상하는 가장 좋은 그림은 검수완박을 성공시킨 덕분에 지방선거도 이기는 상황이다. 여기서 잠깐 역대 지방선거 투표율을 보자.
내가 듣기로 민주당에서는 검수완박을 통해 핵심 지지층을 결속시켜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는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고 한다. 투표율이 낮으면 핵심 지지층을 최대한 동원하는 쪽이 승리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이야기다. 지금 검수완박 강행은 이런 시나리오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과연 그럴까? 국회의원 총선거의 경우에도 투표율은 지방선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통령 선거만 유독 투표율이 높을 뿐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이 기대하는 효과, 기대하는 시니라오가 작동할까? 내 결론은 ‘글쎄다’이다.
지금 민주당은 이미 검수완박 강행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성공이냐 실패냐 두 갈래의 길이 있을 뿐이다. 그 어느 길이든 지방선거에는 악영향이다. 문제는 지방선거 이후에 불어닥칠 후폭풍이다. 어느 정도로 거대한 폭풍이 밀려올지 알 수 없지만, 더불어민주당 창당 이후 경험해보지 못한 폭풍이 불어 닥친다고 감히 주관적인 예측을 내놓는다.
일찍이 15세기의 마키아벨리에 의해 정치의 본질로 끌어올려진 ‘갈등’을 이론으로 정립한 미국의 정치학자 샤츠 슈나이더(E.E. Schattschneide, 1892~1971)는 자신이 쓴 ‘민주주의의 정치적 기초’(2010 페이퍼로드 출판, 이철희 번역)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치의 역동성은 그 기원이 갈등에 있다. 그러므로 정치 전략은 갈등의 조장, 이용, 억압을 다룰 수밖에 없다. 갈등은 매우 강력한 정치적 도구이기 때문에 모든 정치체제는 필연적으로 그것을 관리하고, 그것을 통해 통치하며, 그것은 변화-성장-통합의 도구로서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데 관심을 갖는다." -p114
“정치는 갈등의 관리다. 그러므로 갈등에 대한 단편적 이해에서 벗어나는 게 급선무다. 정치 갈등은 대의명분을 놓고 벌이는 정면충돌이 아니다. 힘의 대결이 벌어지는 문제도 아니다. 기본적으로도 아니고, 대개도 아니다. 스포츠라면 모를까 심각한 문제에서 확실하게 이기는 경우도 아닌데 힘으로 맞설 사람은 없다. 어느 정도의 지성을 갖춘 사람이면 당연히 그럴 것이다.” -p116
2018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뜬금없이 튀어나와 당내 토론을 ‘내부 분열’ 프레임으로 억압하고, 민주적 질서 속에서의 경쟁을 봉쇄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한 질서 정립을 가로막았던 ‘원팀론’이 그 대가를 이미 치르고 있고, 앞으로도 치러야 한다. 억압된 갈등은 더 강렬하게 튀어나올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갈등의 관리에 실패했고, 개혁탈레반과 개혁근본주의자들에게 휘둘리는 정당이 되었다. 온건파의 공간은 없다. 마키아벨리, 막스 베버, 샤츠 슈나이더 등이 정립한 현대 정당이론을 완벽하게 무시하고, 완벽하게 반대의 길을 갔던 후폭풍을 감당해야 할 시간이 밀려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