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석 국회의장이 더불어민주당을 살렸다. 박병석의 중재안은 절묘했다. 중재안을 받은 민주당도 살고, 국힘도 명분을 얻었다. 검찰은 그동안 뿌린대로 거뒀다. 업보다. 수뇌부 이하 고위 간부들이 사퇴한다고 하는데, 어차피 신임 검찰총장이 임명되면 사퇴할 사람들이다. 이런 식의 사퇴를 한 두 해 본 것도 아니다.
4월 20일에 쓴 글에서는 나는 ‘권력 독점의 해체’와 ‘견제와 균형’을 핵심 주제로 이야기를 했다. 근대 민주주의 발전 역사는 권력 독점이 해체되는 역사였고, 권력과 권력이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역사였다. 그 목표는 시민의 인권 보호다. 그래서 6대 범죄 수사에 대한 대안이 함께 제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기소청과 수사청을 언급했다. 이번 박병석 중재안은 이 내용을 담았다. 그나마 진일보했다. 그러나 여전히 경찰 권력에 대한 견제는 빠져있다. 향후 논의 과정에서 반드시 추가되어야 한다. 언제부터 대한민국 경찰을 이렇게 신뢰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검찰 못지 않게 경찰도 신뢰하지 않는다.
박병석 중재안이 남긴 과제
박병석 중재안을 토대로 특위를 구성해 법률안을 만들겠지만 숙제는 많다. 의구심도 많다. 그래서 질문만 해놓기로 한다.
- 1. 검찰이 직접 수사권을 갖고 있는 6대 범죄 가운데 부패범죄와 경제범죄를 남기고, 공직자범죄, 선거범죄, 방위사업범죄, 대형참사범죄를 수사 대상에서 제외한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누가 수사하는가? 경찰이 한다. 이미 2020년 검찰 개혁 이후 경찰의 수사가 포화상태를 넘어 감당 못할 수준이라고 하는데 정말 ‘수사 증발'로 해결할 셈인가? 범죄자가 날뛰는 세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괜한 걱정일까?
2. 6대 범죄를 통째로 삭제하던가, 아니면 통째로 유예를 하던가 했으면 쉽게 납득이 갔을텐데 왜 하필 4개는 빼고, 2개만 남겼을까? 더구나 국회의원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선거범죄가 빠진 것은 국회의원들의 기득권 유지 수단 아닌가? 그래서 야합이라는 평가가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3. 국민의힘이 순순히 박병석 중재안을 받았다. 무슨 생각일까? 무슨 꿍꿍이일까?
4. 마찬가지로 윤석열 당선인 인수위원회도 국회의 합의를 존중한다며 중재안을 받았다. 역시 무슨 생각일까? 무슨 계산이 있을 것 같은데?
5. 민주당은 옳다구나하고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금방 이해가 된다. 박병석 중재안이 없었으면 민주당은 이래저래 그냥 망하는 상황이었다. 여론은 악화되고, 당내에서도 양향자만 컨트롤하면 될줄 알았더니 이광재, 박용진, 전재수, 김종민 등 여기저기서 ‘수박’을 자처하고 나섰고, 심지어 이재명의 최측근 그룹인 김병욱도 ‘검수완박이 이해가 안된다’며 반대하고 나섰고, 이재명이 한 시간이나 전화통화를 하며 설득한 끝에 비대위원장으로 ‘발탁’한 박지현도 ‘수박’ 대열에 합류했으니 박병석 중재안은 그야말로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이었다. 안잡으면 죽을 판인데 얼른 잡아야 한다. 불감청고소원이 이럴 때 쓰이는 말이 맞지?
6. 내용에 대한 궁금증이다. 경찰한테 막강한 권력이 생긴다. 수사권한이 늘어나는만큼 권력이 커진다. 견제와 통제 장치는 있나? 잘 만들겠지?
7. 경찰청 산하에 FBI 같은 조직으로 수사청을 만든다고 하는데, 그러면 이미 만들어놓은 국가수사본부와는 어떻게 다른거지? 어떻든 권력을 잘게 쪼개는 건 환영!
8. 경찰청 산하든, 독립외청이든 수사청을 만든다고 치자. 여기에 필요한 수사 인력은 어떻게 충원하는가? 경찰은 지금도 허덕허덕하는데 인력이 있을리 없다. 갑자기 없는 능력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래서 기존 검찰 인력으로 대거 충원하면? 그냥 현재의 검찰을 수사청과 기소청으로 분리하는 셈이 된다. 내가 보기엔 검찰이 두 개 만들어진다. 아마 이렇게 되지 않을까? 그래도 수사와 기소를 하나로 합쳐 놓은 조직보다는 분리시키는 게 나으니까 괜찮은거지?
9. 검찰이 그동안 쌓아 놓은 수사 역량은 어떻게 보존할 것인지 대책이 필요해보이는데? 공수처가 헤매는 걸 보면서 더욱 중요한 사안이 된 것 같다. 국회에서 이런 고민은 하고 있는 건가? 부패공화국이 되고, 범죄자들이 날뛰는 세상이 안온다는 보장이 없는데?
10. 마지막으로 민주당에게. 혹시라도 윤석열 정권 하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진 경찰이 휘두르는 칼이 살벌해도 편파수사니, 경찰이 윤석열의 주구니 하는 소리는 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 검찰이 지금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도 다 뿌린대로 거둔 결과이듯, 앞으로 닥칠 일도 민주당이 뿌린대로 거둔 결과이니 순순히 받아들이기 바란다. 경찰 권력 비대화에 대해 걱정 안하고 견제장치에 대해 고민을 안하는 걸 보니 경찰을 만만하게 보는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엄청 태평해보여서 하는 말이다.
11. 민주당인 욕먹는 이유를 알려준다. 이번 검수완박 추진 과정을 보면 그 의도가 애국의 차원이라든지, 시민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거라든지 하는 대의명분이 안보여서다. 이렇게 사생결단할 정도의 사안이었으면 왜 대통령 선거 이전에는 하지 않았나? 차별금지법은 왜 이렇게 추진하지 않았나? 지금이라도 차별금지법을 검수완박 밀어부치듯이 밀어붙여야 하는 거 아닌가? 국민의힘이 검수완박보다 저항도 덜 할 것 같은데?
덧. 박병석한테 고맙다고 인사해도 모자랄 판에 개혁을 빙자한 훌리건들은 박병석을 욕하기 바쁘다. 어마무시하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하는 의회민주주의자들은 전부 수박으로 혐오하고 조롱하는 이런 훌리건들이 민주당을 좌지우지 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무슨 민주주의를 떠드는지 이해불가다.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파시스트라고 부른다. 민주당의 앞날은 결코 밝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