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금요일, 그러니까 5월 27일에 내가 몸담고 있는 <미디어토마토> 아래층에 있는 언론사 <뉴스토마토> 워크숍이 있었다. 이날 ‘미디어 산업의 미래’를 주제로 발제를 했는데, 예전부터 내가 갖고 있던 문제의식을 담았다.(12p 짜리 PPT 파일로 작성했다)
언론사들이 쏟아내는 기사는 역사(History)다. 역사와 이야기(Story)는 다르다. 그러나 지금 한국 사회는 온갖 이야기꾼들이 지어낸 가짜뉴스(fake), 더 정확하게는 거짓말(lie)이 역사 행세를 하고 있다. 역사와 이야기가 뒤죽박죽된 세상이다. 이는 오랫동안 가짜뉴스를 생산한 언론에 1차적인 책임이 있다.
그러나 이게 전부는 아니다. 언론의 가짜뉴스에 맞서겠다며 등장했던 온갖 ‘대안언론’이라 칭하는 다양한 매체는 기성언론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은 ‘거짓말’(이들은 뉴스를 생산하지 않는다. 99.9%는 기성언론의 뉴스를 토대로 이야기를 꾸며내는 사람들이다.)을 대량으로 쏟아내고 있다. 비록 한국 언론이 1%의 가짜뉴스 때문에 그 신뢰도가 급락했을지언정 오늘도 묵묵히 대한민국 역사를 기록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이 대목에서 한국 언론에 몸담은 기자들의 노고에 감사 인사 드린다)
History(역사)와 Story(이야기)는 어떻게 다른가
역사는 ‘과거에 벌어진 사건이나 분쟁’에 관한 기록, 사실, 검증된 이론을 의미한다. 언론이 매일 기록하고 있는 뉴스 중에서 거짓말이나 가짜뉴스를 제외하면 대부분 역사 기록으로 남는다. 학자들은 언론이 생산한 기사를 토대로 검증 절차를 거쳐 역사를 재구성한다. 학자의 주장도 검증이 되어야 역사로 남는다. 검증되지 않은 이론은 그저 추론으로 남을 뿐이다.
역사는 이야기의 일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야기 그 자체로 역사는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사실로 확인되어야 하고, 증거로 증명되어야 한다. 반면 이야기는 대체로 허구나 상상을 토대로 한다. 유튜브 방송의 90%를 차지하는 ‘추측’, ‘추론’, ‘음모론’은 모두 이야기에 해당할 뿐 역사는 아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의혹을 빙자한 온갖 ‘추측’을 ‘사실’로 받아들인다.
한국인들의 문해력이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국가 중 최하위에 속한다는 결과가 말해주듯, 추측과 사실, 추론과 사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검증되지 않은 추측이 곧장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문화는 이제 주류 문화가 되었다. 소위 B급 문화가 각광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김어준이다. 그리고 지금 유튜브 세상은 소위 진보와 보수, 우파와 좌파 막론하고 김어준을 벤치마킹한 이야기 업자들이 판치고 있다. 역사가 끼어들 틈은 없다.
이야기를 전파하는 수단으로 대세가 된 유튜브에서 사실을 찾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문자로 되어 있다면 검색을 통해 검증이라도 해볼텐데, 영상은 검증할 방법이 없다. 누가 자신의 아까운 시간을 들여서 방송을 듣고 검증할 건가? 그렇게 방치된 거짓말은 한국 사회, 더 정확하게는 정치를 뒤덮어버렸다. 더불어민주당이고, 국민의힘이고 다르지 않다. 오히려 선구자는 민주당 주변에서 나왔다. 우파 유튜버들은 좌파 유튜버들이 하는 걸 보고 따라하더니 그야말로 청출어람했다.
그렇게 누구도 검증하지 않고 방치된 거짓말은 이제 손쓸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쓰레기 더미가 되었다. 심지어 그 쓰레기 더미가 역사 행세를 하고 있다. 비록 욕을 먹고는 있지만 언론이 없다면 한국 사회는 지금보다 더 혼란한 사회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스 신화 <일라이드>의 덕후 슐레이만
트로이를 찾았지만 역사로 인정받지는 못해
브래드 피트가 주인공인 아킬레우스로 출연한 영화 <트로이>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을 각색한 영화다. 이 영화에는 유명한 트로이 목마도 등장한다.
포스터에 나온 두 사람은 아킬레우스(오른쪽)와 트로이 왕자 헥토르(왼쪽)다. 너무 유명한 전쟁이지만 호메로스의 기록에 의하면 기원전 1200년 쯤 벌어진 전쟁이다. 호메로스는 그로부터 400년 후에 태어났다. 당연히 역사의 목격자가 아니다. 전해오는 이야기를 정리했을 것이다.
독일의 하인리히 슐레이만이라는 사람은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의 덕후였는데 트로이 목마를 찾기 위해 열심히 돈을 모아 지금의 터키 땅인 차낙칼레로 향했다. 그리고 마침내 많은 역사가들의 비웃음을 뒤로한채 트로이 유적을 찾았다.(아래 사진 왼쪽은 슐레이만이고, 오른쪽은 그의 부인이다. 트로이에서 유적을 발굴한 슐레이만은 발견한 유물을 부인에게 선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로이 전쟁이 실제로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증명하지 못했다. 트로이 유적을 발견했다고 전쟁이 있었다는 증거는 아니기 때문이다. 슐레이만도 트로이가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낸 데 만족했다. 트로이 전쟁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없었고, 특히 유명한 트로이 목마는 흔적도 없었다.(아래 이미지는 영화 트로이에 나오는 트로이 목마다.)
허황옥 덕후의 무리수
다큐 영화 하나로 스스로 역사적 사실이라고 주장
반면 슐레이만과는 반대로 우리나라에서는 역사학계의 검증도 거치지 않고 다큐 영화 하나 만들어서 허황옥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피디가 등장했다. 불과 한 달도 안된 이야기다. 대대적으로 언론 홍보를 해서 기사도 많이 나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사학계에서는 허황옥의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 다큐 영화를 만든 감독이 얼마나 대단한 증거를 찾았는지 모르겠지만 몇 개 사실을 이어붙인 Story다. 이 분야의 최고봉은 역시 김어준인데 추론과 추론을 이어붙이고, 그 사이 사이에 몇 개의 사실(fact)를 집어넣어 전체를 사실로 포장하는 기술이다. 황우석 사태 당시 유태인 음모론, 천암함 침몰 원인은 이스라엘 잠수함설, 2012년 대선 당시 K값 음모론, 지금도 세월호 진상 규명을 가로막고 있는 <그날, 바다>와 <유령선> 등 너무 많아서 한국 사회에 미치는 해악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김어준의 수법은 이제 좌우 불문하고 유튜버들의 전형적인 돈벌이 기법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허황옥은 박정희 시대의 민족주의의 산물이기도 하다. 어느 동화 작가가 던진 돌멩이 하나가 거대한 스노우볼이 되어 ‘위대한 민족’이라는 서사를 만들었다. 김해시 입장에서도, 허씨 가문 입장에서도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특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불교계다. 과거 대부분의 설화나 신화는 주로 종교에서 만들어졌는데, 한국 불교계도 그랬다. 힌두교의 역사를 한국 불교에 가져온 것이다. 허황옥이 살았다는 인도의 한 마을은 힌두 민족이 거주하는 마을이고, 인도의 힌두민족주의자들도 허황옥을 실제 역사로 부풀렸다.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역사학계는 단순한 설화로 일축하고 있다.
이야기를 역사로 받아들이는 세태도 문제
이런 사례는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허준의 동의보감을 토대로 만든 드라마 <허준>이다. 허준의 스승으로 등장하는 유의태는 실제로는 허준보다 100년 뒤에 태어난 사람이다. 이름도 유의태가 아니라 유이태다. 더구나 허준은 경상남도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경기도 사람이다. 그런데 드라마가 인기를 끌자 경남 밀양에서는 ‘얼음골동의제’라는 축제도 만들었다. 얼음골은 드라마에서 허준이 스승 유의태의 시신을 해부하는 장소로 등장한다. 드라마를 위한 완벽한 허구(fiction)를 사실처럼 바꿔버렸다.
영화 <광해>, <영원한 제국>은 역사 왜곡을 불러오기도 했다. 광해군에 대한 소위 진보 혹은 좌파 진영의 인용은 실로 대단하다. 최서원(옛 최순실)의 딸 정유라 부정입학 사건과 관련해 형사처벌을 받은 이인화가 쓴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영원한 제국>은 정조를 지나치게 미화하고 노론을 완전히 악마화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우파가 쓴 소설로 만든 영화를 매개로 좌파(상대적 개념이다)인 민주당쪽 사람들이 대한민국 역사를 노론이 지배한 역사로 이해하고, 정조를 마치 엄청난 개혁 군주로 받들어모시고, 민주당의 오래된 조상처럼 여긴다는 점이다. 아래는 이해찬이 ‘20년 집권론’을 설파하면서 <시사인>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우리 역사의 지형을 보면 정조대왕이 1800년에 돌아가십니다. 그 이후로 220년 동안 개혁 세력이 집권한 적이 없어요. 조선 말기는 수구 쇄국 세력이 집권했고, 일제강점기 거쳤지, 분단됐지, 4·19는 바로 뒤집어졌지, 군사독재 했지, 김대중 노무현 10년 빼면 210년을 전부 수구보수 세력이 집권한 역사입니다.”
누가 노론인가? 당연히 민주당 반대편에 있는 국민의힘이다. 친일독재의 후예도 모자라 노론의 후예로 만들었다.(토착왜구로 따지면 민주당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한민당이 전형적인 토착왜구다. 친일파 지주들이 모인 정당으로 이승만의 토지개혁에 저항했던 수구세력이다. 이들이 이승만 반대편에 선 이유는 토지개혁 때문이었다. 누가 토착왜구인가? 민주당 조상들이 토착왜구 아닌가?)
그러나 역사학자들에 의해 증명되듯이 정조는 노론과도 사이좋게 지냈다는 기록이 이미 나왔다. 정조의 인간성을 알 수 있는 사료가 대거 발굴됐다. 정조에 대한 미화가 얼마나 엉터러인지는 수많은 역사적 기록이 증명하고 있다. 우파인 이인화가 만든 정조 우상화를 좌파인 민주당이 신주단지처럼 떠받들고 사는 모습은 정말 우스꽝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스토리가 히스토리를 어떻게 농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의 이재명은 호남을 백제에 비유했다. 순전히 전라도와 경상도, 평안도 사투리가 난무하는 영화 <황산벌>에서 백제 사람들이 전라도 사투리를 썼기 때문이다. 실상 백제는 서울(위례)과 인천(미추홀), 충청도(부여의 사비성, 공주)가 주요 무대였다. 백제의 역사를 공부하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기껏해야 후백제 때 견훤이 전주에 잠시 머물기는 했지만 주요 무대는 역시 충청도였고, 견훤은 경북 상주 출신이다. 무엇보다 백제를 호남으로 인식하는 그 기저에는 호남차별주의가 깔려 있다.
이와 비슷한 일은 당대에도 벌어지고 있다. ‘검찰과 언론이 노무현을 죽였다’는 민주당 진영 사람들의 ‘종교적 믿음’이 바로 그것이다. 존재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과 관련자들의 증언을 몽땅 뒤엎어버리고 자기들 멋대로 검찰과 언론을 악마화하는 수단으로 노무현의 죽음을 활용하고 있다.(검찰과 언론의 행태는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딱 여기까지다) 이와 관련해서는 내가 쓴 책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에 자세히 설명을 했지만 출판사가 망해서 절판됐다. 올해 안에 새로 고쳐써서 노무현의 죽음을 이분법적 적대 정치에 활용하는 역사 왜곡을 바로 잡을 생각이다.
사마천을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사마천이 나의 인생 스승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기자가 된 이후, 그것도 한참 지나서 내 삶의 방향을 결정하면서 사마천을 길잡이로 삼았다. 사마천은 인류 최초의 기자이자, 1인 미디어였다. 그가 남긴 <사기>는 존경심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사마천은 한나라가 흉노족에게 패배한 전쟁의 책임을 놓고 사실대로 기록했다가 한무제에 밉보여 궁형을 당했다. 그리고 치욕을 견디고 살아남아 사기를 남겼다. 사마천은 훗날 한무제를 폭군으로 묘사했지만 한무제도 자신이 사마천한테 저지른 잘못이 있어서 그 기록을 그대로 두었다.
기자라는 직업의 본질은 역사를 기록하는 데 있다. 그런 측면에서 영어로는 리포터(Repoter)가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재료를 모으는 직업이다. Journalist도 많이 쓰이지만, 저널리스트는 단순히 사실을 기록하기보다는 사실이나 사건에 대해 평론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어원 자체가 journey에서 유래한다.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세상에 벌어지는 일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덧붙여서 전해주던 사람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날 기자들은 둘의 의미를 모두 포괄하기는 한다. 그럼에도 기자수첩이나 칼럼을 제외하고는 단순 사실을 전달하는 역할이 90% 이상이다. 그래서 리포터가 적합하다.
역사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의견을 붙일 수도 있지만 1차적으로는 보고 들은 대로 기록하는 게 업(業)의 본질이 아닐까 한다. 스토리가 히스토리 행세를 하면 세상은 타락한다. 지금 이 시대가 그렇다. 최초에 등장할 당시만 해도 수백억 개의 뉴런과 뉴런이 연결된 인간의 뇌처럼 흩어진 지성이 모여 집단 지성을 만들어낼 것으로 기대했던 인터넷은 이제 거대한 집단 바보, 집단 무지성을 양산하고 있다. 사실이 아니어도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면 박수 치고, 사실을 말해주어도 듣기 싫은 소리는 배척하는 시대다. 정치 고관여자들은 거의 모두 확증편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모두가 이야기를 좋아하는 인간의 본성을 파고든 이야기꾼들(Storyteller), 더 정확하게는 거짓말쟁이들(Liar)이 판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거짓말쟁이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기자라는 직업은 이 시대가 더욱 필요로 하고 중요한 직업이다. 기자라는 직업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면 말이다.
이 시대를 목격하고 기록하고 있는 모든 기자들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