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지방선거 결과에 대한 여러 가지 단상 및 민주당의 미래에 대해 짤막하게 논평한다.
1. 여론조사는 틀리지 않았다
여론조사는 추이를 읽어주는 지표인데, 이번 지방선거에서의 여론조사도 대개는 추이를 읽는 데 도움이 됐다. 그럼에도 일부 조사는 편차가 극심하게 나타나기도 했다. 그 일부의 여론조사만 갖고 여론조사 전체를 부정하는 사람도 있는데 전형적인 침소봉대, 일반화의 오류다. 실제 결과와 편차가 큰 여론조사도 극히 일부 있었지만, 대부분의 여론조사는 판세 자체를 정확하게 읽어냈다.
위 이미지는 5월 25일자 여론조사 종합이다. 민주당은 경기, 대전, 충남, 세종에서 경합이었다. 이 가운데 원래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경기도만 이기고 나머지는 모두 국힘이 이겼다. 민주당은 경기도를 겨우 8900표 차이로 이겼는데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경기도는 지속적인 도시화로 민주당이 질 수 없는 지역으로 바뀐 지 오래다. 이걸 이재명 덕분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무지성이 어떤건지 알만하다.
50%를 갓 넘긴 저조한 투표율은 여론조사를 무력화할 수도 있다. 추세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여론조사 흐름은 실제 결과와 비슷했다. 낮은 투표율로 인해 이번 투표는 충성도 높은 양당 지지자들의 대결이었다. 이는 조직 대결의 양상으로 바뀐다. 대세에 밀렸던 민주당이 그나마 경기도를 건진 이유다. 투표율이 더 높았다면 경기도는 국힘당으로 넘어갔을 것이다.
2. 민주당은 선방했나? 패배했나?
결과를 놓고 갑론을박하고 있는데, 나는 양심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3월 9일 패배도 ‘선방했다’, ‘졌지만 잘 싸웠다’로 평가했는데 이게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평가인가 되묻는거다. 데이터와 근거를 갖고 이야기해야 한다. 졌잘싸를 주장할 때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제시한 근거가 다른 근거로 탄핵을 당하면 또 다른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그렇게 종합적으로 결론을 찾아가야 한다. 이번 지방선거는 선방인가? 대패인가? 그 근거는 무엇인가?
다시 말하지만 5월 초순까지 팽팽했다. 이 즈음 김민석과 이재명이 8~9곳을 이길 수 있다고 말한 이유다. 이후 팽팽한 균형이 무너졌다. 왜 무너졌나?
-5월 3일 검수완박법 국회 본회의 통과
-5월 4일 검수완박법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 의결
-5월 8일 이재명 인천 계양을 출마 선언
-5월 9일 한동훈 청문회에서 처럼회 처참한 패배
이후 5월 10일부터 12일까지 사흘간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10%p나 폭락했다. 그리고 1주일 뒤에는 5월 12일자 터진 박완주 성비위 사건이 반영되며 지지율이 20%대로 주저앉았다. 민주당을 말아 먹은 검수완박은 왜 밀어부쳤나? 조국의 강을 건너지 못해 한동훈에게 원한을 가진 자들과 이재명에게 들이닥칠 수사의 칼날을 무디게 하려는 자들이 합작한 작품이다.
이게 5월 초순에서 중순까지 벌어진 일이다. 그럼에도 경기도 김동연, 충남 양승조, 대전 허태정은 인물 경쟁력으로 버텼다. 세종은 공무원 도시여서 민주당 우위였다. 그런데 경합 지역이 모두 국힘당으로 넘어갔다. 5월 중순에서 6.1 선거일까지 무슨 일이 있었나?
5월 8일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 출마 선언을 한 이재명은 이후 인천 곳곳에서 말썽을 일으켰다. 이재명이 뉴스를 장악했다. 그러면서 인물 경쟁력으로 버티던 충청권과 강원도는 이재명이 유세 오는 것 자체를 꺼리게 됐다. 인천 박남춘은 이재명이 인천에 온 이후 지지율 격차가 더 벌어지면서 완전히 열세로 굳어졌다. 이재명도 여론조사가 박빙으로 붙으면서 인천에 묶였다. 이에 탈출구로 5월 27일 김포공항 이전과 신도시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후 넉넉하게 앞서던 제주도까지 급박하게 돌아갔고 제주 지역 후보자들이 긴급 기자회견까지 했다. 충청권 접전 지역은 모두 무너졌다.
나도 주장을 할 뿐이다. 다만 반론을 하려면 근거와 데이터를 제시해야 한다. 주장을 하려면 사실과 근거, 데이터를 갖고 해야 한다. 민주당은 근거 없는 주장이 난무하는 문화가 주류 문화가 됐다. 그야말로 반지성주의가 장악했다. 철지난 미제국주의 타령하면서 이라크 파병 반대하고,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 반대하고, 제주해군기지 반대하고 구럼비 바위 지키자를 떠들고, 경부고속철 천성산 터널 반대하고 도롱뇽 지키자 떠들고, 민주노총의 시대착오적인 주장을 무조건 옹호하고, 한미FTA 체결하면 미국 식민지 된다면서 결사 반대하고,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신자유주의 정부라 부르고, 개혁을 많이 하지 않아서 망했다고 주장하는 그런 반지성주의 탈레반들이 장악했다. 그야말로 반노무현의 세상이다. 민주당에 노무현은 없다.
3. 박지현의 책임과 공헌
지방선거에 참패하자 이재명 지지세력은 일제히 박지현을 화형대 위에 세웠다. 30살 조민은 어린 소녀처럼 취급하던 민주당 강경 지지세력은 27살 박지현에게는 온갖 패악질을 서슴치 않았다. 총괄선대위원장인 이재명 책임은 거론하지 않는 파렴치하고 뻔뻔한 행태를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하긴 이재명 지지자들에게 마녀로 찍힌 박지현도 이낙연한테 대선 패배 책임을 떠넘겼으니 박지현이나 이재명 지지자들이나 피장파장이긴 하다.
가슴에 손을 얹어라. 이번 선거가 박지현 한 사람 때문에 졌나? 정말? 박지현은 일반 시민들이 듣기에 옳은 말을 정말 많이 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시간과 방법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는 불만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는 박지현의 미숙함이다. 그런 미숙한 박지현을 비대위원장에 앉힌 게 누군가? 이재명이다. 이재명 지지자들은 박지현 배후에 이낙연이 있다는 거짓말을 유포하기도 했다. 트럼프도 혀를 내두를 수준이다.
사람이 일을 하면 1부터 100까지 잘못하기는 힘들다. 박지현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과 별개로 선거 국면에서 박지현은 그나마 민주당이 참패하는 걸 막아냈다고 평가한다. 당원들 입장에서는 속터졌겠지만, 거리를 두고 정치를 바라보는 일반 유권자들에게는 박지현 메시지가 그나마 민주당을 찍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고 봐야 한다. 방송 3사 출구조사를 보면 20대 여성 68% 정도가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했다. 이 득표율은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득표한 69%에 버금가는 수치다. 그리고 이건 박지현의 공헌이다.
박지현이 없었으면 20대 남성이 민주당을 찍었을거라고? 불과 5년 전 대선과 4년 전 지방선거에서 일방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해줬던 20대 남성들이 윤석열한테 표를 주자 ‘20대 개새끼론’이나 떠드는 배은망덕한 정당한테 표를 왜 주나? 민주당은 20대 남성들의 표심을 얻는 데 상당 기간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20대 여성 표는 제대로 지킬 수 있을까? 박지현을 희생양으로 두들겨패는 개저씨와 개줌마가 즐비한 정당이?
4. 무서운 서울 시민들
송영길은 이번 선거에서 서울 25개 지역 중에서 단 한 군데도 이기지 못했다. 전 지역에서 패배했다. 심지어 동 단위로도 전패했다. 서울 시민들의 투표는 정말 무서웠다. 송영길에게는 40%도 안되는 득표율로 매서운 심판의 투표를 했다면, 당을 떠나서 지역을 위해 헌신했다고 인정한 민주당 소속 구청장 8명은 살려줬다. 송영길 득표율은 39.23%고, 민주당 소속 구청장 후보들이 올린 평균 득표율은 45.74%였다. 6.5%p가 넘는 차이다. 이번 지방선거 누구 때문에 패배했나? 양심들 좀 챙겨라. 송영길의 명분없는 출마에 대해 엄중한 심판을 내렸다.
심지어 민주당 절대 강세지역인 관악구, 중랑구, 금천구에서도 이기지 못한 지점은 송영길 뿐만 아니라 서울시장 출마를 부추긴 모든 자들이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송영길은 이걸로 정치는 끝났다. 아주 불명예스러운 은퇴식이었다. 자업자득이다. 부추김에 넘어가서 멀쩡한 국회의원직 던지고 서울시장 출마할 정도의 정무감각이면 이제 정치 그만둘 때다.
5. 김동연이 이재명 덕에 이겼다고?
경기도는 서울과 정반대다. 서울이 송영길을 심판하고 구청장 8명을 살려줬다면, 경기도에서는 기조단체장 선거에서 민주당을 심판하면서도 김동연은 살려줬다. 경기도에서 민주당은 수원시, 안양시, 부천시, 광명시, 평택시, 화성시, 시흥시, 파주시, 안성시 등 9개 지역에서 이겼다. 획득한 득표수는 2,732,028표다.
김동연은 더 많은 지역에서 이겼다. 수원시, 안양시, 부천시, 광명시, 안산시, 고양시, 의왕시, 남양주시, 오산시, 화성시, 시흥시, 군포시, 파주시 등 총 13개 지역에서 승리했다. 총 득표수는 2,827,593표다. 특히 김동연은 민주당이 패배한 안산시, 고양시, 의왕시, 남양주시, 오산시, 군포시 등 6개 지역에서도 승리했고, 이 결과가 최종 승리로 이어졌다.
깁동연은 민주당 기초단체장 후보들 총득표수보다 95,565표를 더 얻었다. 김은혜와의 표 차이는 불과 8913표다. 이게 이재명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나? 이재명을 보고 투표했다면 왜 기초단체장들은 그 덕을 못보았나? 경기도민들이 김동연만 이재명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밀어주고, 나머지는 이재명과 무관하다고 생각해서 안밀어준건가? 당장 남양주시 최민희는 대표적인 친이재명이다. 그런데 남양주 시민들은 20,140표 차이로 최민희를 떨어뜨리고, 김동연한테는 김은혜보다 4,534표를 더 줬다. 남양주시에서 김동연은 최민희보다 거의 1만표를 더 얻었다.
참고로 김동연은 패배했지만 민주당은 승리한 평택시와 안성시는 순전히 정장선과 김보라 현 시장의 인물 경쟁력으로 이긴 지역이다. 마찬가지로 김동연이 승리한 지역도 김동연의 인물 경쟁력 덕분이지 이재명과는 상관이 없다. 이재명 덕분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김동연과 민주당 소속 기초단체장의 선거 결과가 다르지 않아야 한다.
참고로 경기도 기초단체장 선거에 출마한 국힘당 후보들이 얻은 총 득표수는 3,215,891표다. 김은혜는 2,818,680표 밖에 얻지 못했다. 거의 40만표 차이가 난다. 김은혜가 인물 경쟁력이 형편없어서 당 지지율도 못받아 먹었다는 이야기다. 강용석 때문에 졌다는 건 사실과 맞지 않다. 강용석이 얻은 표는 고작해야 5만표다. 40만표의 간극은 오로지 김은혜 개인 탓이다. 민주당 송영길이 서울에서 심판받은 양상과 동일하다.
6. 여전히 대단한 광주 시민들
광주 지역 투표율이 37.7%다. 40%를 넘기지 못했다. 민주당 일당 독재라서 마땅한 대안도 없다. 국힘당이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당장 표를 주기에는 마뜩찮다. 이런 마음을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은 선거 보이콧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광주 시민은 선거 보이콧으로 민주당을 심판했다. 국힘당은 지금 하던대로 계속 노력해서 광주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는 전략으로 가야 한다. 다음 총선에서는 좀더 유의미한 득표가 가능할 것이다. 역사적인 일을 만들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열렬히 응원하는 바이다. 정치 발전은 물론이고, 역사의 굴레를 뛰어넘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낼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해본다.
7. 김동연, 이재명의 경쟁자로 부상하다
김동연은 경기도지사 당선과 동시에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 반열에 올랐다. 마땅한 인물이 없는 민주당 상황에서 김동연은 중도온건 노선을 이어갈 적임자다. 관료 출신의 안정감도 장점이다. 김동연 당선을 마치 이재명의 일처럼 기뻐하는 이재명 지지자들이 머지 않아 김동연을 향해 ‘수박’이라 조롱하고 혐오하게 될 것이다. 이재명 지지자들의 주요 특성이 관료 출신들과 중도 온건 노선 혐오다. 김동연한테 환호하는 이유는 단지 이재명 꼭두각시로 이재명의 도우미가 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동연이 이재명 도우미로만 남을까? 민주당에 차기 주자도 별로 없는데? 머지 않아 차기 대선 주자 여론조사에 김동연 이름이 올라올 것이다. 그때부터 이재명 지지자들의 히스테리가 시작될 것이다. 민주당은 김동연 하나 제대로 건사해낼 수 있을까?
8. 이재명은 민주당 대표 선거에 반드시 나온다
당 안팍에서 이재명 책임론이 쏟아지자 곧바로 물타기가 들어왔다. ‘모두의 책임’이 그것이다. ‘모두의 책임’이라는 말은 ‘아무도 책임이 없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민주당은 지금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는 말을 하고 있다. 그래서 졌잘싸 시즌 2다. 물론 자기들 입으로 졌잘싸를 떠들지는 않는다. 이미 졌잘싸 떠들었다가 선거 참패한 마당에 반복할 수는 없다. 대신 ‘모두의 책임’, 즉 ‘아무도 책임이 없다’는 말로 대신 하고 있다.
심지어 문재인 정부 평가 운운하고 있다. 나 역시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퇴임 직전까지 여론 지지율이 높았다고 역사적 평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여론조사와 역사적 평가는 다르다. 그런데 민주당이 그럴 자격이 있나?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 누구 덕분에 이겼나? 당시 기사를 찾아봐라. 모든 언론이 문재인 대통령 덕분이라고 써놨고, 민주당 정치인들도 그렇게 떠들었다. 그런데 대선 패배했다고 그 책임을 문재인 정부한테서 찾겠다고? 2007년에 하던 짓 그대로를 반복하고 있다. 그래서 2008년 이후 민주당이 어떤 꼬라지였는지 돌아보기 바란다.
하긴 민주당 역사도 제대로 모르는 인간들이 이런저런 줄타고, 개혁인사입네 몇 마디 떠든걸로 공천받고, 재수 좋게 대세에 올라타서 손쉽게 국회의원 뱃지 달고 했으니 그 수준에 걸맞기는 하다. 이 대목에서 국힘당 이준석이 도입한 평가시험은 정말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속한 정당의 역사도 제대로 모르고, 자기가 속한 정당의 당헌, 당규도 모르는 인간들이 정치를 하고 있으니 그 정당이 제대로 굴러갈리가 있겠나?
이재명은 무조건 당 대표 선거에 나온다. 큰 격랑에 휩싸일 것이다. 이재명은 당이 망가지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 당이 찢어지든 망가지든 ‘이재명당’이기만 하면 된다.
8-1 완벽한 이재명의 꼭두각시는 있을까?
이재명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지 않는 상황은 완벽하게 이재명이 통제할 수 있는 허수아비를 내세우는 경우다. 가능할까? 나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당 대표에 나올 정도면 누구 허수아비나 하고 있을 사람이 없다. 물론 협력관계나 연합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건 이재명이 원하는 그림이 아니다. 이재명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비대위는 이재명이 완벽하게 통제했던 비대위라고 할 수 있다. 박지현은 충실한 허수아비였다.
9. 차기 당 대표는 이재명이 될 것이다
경악할 사람이 많겠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현 상태로 8월에 전당대회를 하면 이재명이 당 대표에 선출될 것이다. 당 대표는 당원들 투표로 선출된다.(전당대회 앞두고 룰을 변경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대의원과 당원들이 결정하기는 마찬가지다) 홍영표는 ‘당원만 빼고 싹 바꿔야 한다’고 했는데, 내가 보기엔 홍영표는 지금 민주당 상태를 잘 모르는 것 같다. 이재명은 당원들 선택을 받아 대선 후보가 된 사람이다. 그 당원들이 어디로 가기라도 했나? 이재명의 압승을 예상한다.
이재명의 상대방이 누구든 최소 6대 4, 최대 7대 3의 승부를 예상한다. 그 사이에 대의원들과 당원들이 대오각성을 하지 않는 한 말이다. 민주당 당원들은 김어준 등 소위 스피커들에게 뇌를 의탁한 사람이 절대 다수다. 그 비율이 60%는 된다. 그 스피커는 전부 이재명 지지자들이다.(이재명이 여기까지 혼자 오기는 개뿔. 신파도 말이 되게 해야지) 넓은 세상과 담쌓고 오직 뉴스공장과 유튜브나 팟캐 따위나 보고 듣는 사람들이 거의 전부다. 그게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이런 사람들이 지금 민주당 당원의 다수다. 그렇지 않은 나머지 당원 비율은 잘해봐야 40% 될까? 솔직히 이 수치도 높게 잡았다. 넓은 세상을 바라보며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당원은 30% 될까말까다.
민주당은 개미지옥에 빠진지 오래다. 헤어날 수 없는 수렁이다. 김어준당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당이 너덜너덜해져서 이재명에게 쓸모가 없는 정당이 될 때까지 이 상황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재명이 민주당에 붙어 있는 것은 민주당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실현해주는 최고의 수단이기 때분이다. 따라서 그 수단으로 효용성이 있는 날까지는 단물을 쪽쪽 빨아 먹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더 이상 빨아먹을 단물이 없거나, 생물학적으로 이재명이 잘못 되지 않는 이상 이 개미지옥에서 빠져 나오기 힘들 것이다.
10. 이재명에 맞설 세력은 미미하다
누가 있어 이재명과 맞설 수 있을까? 단언컨대 없다. 홍영표? 전해철? 더구나 이낙연은 전쟁을 앞두고 미국으로 출국한다. 전쟁이 끝난 뒤에 돌아와서 무얼 할 수 있을까? 그 전쟁터는 이재명이 승리를 거둔 전쟁터일 것이다. 원외라서 마땅히 할 역할도 없다. 당내 세력이 든든하게 있는 것도 아니다. 홍영표와 전해철의 우군은 있나? 민주당 주변에 붙어먹고 사는 스피커 업자들이 이미 수박이니 뭐니 하며 악마화를 지속적으로 해왔고, 당장 전당대회까지 줄기차게 총공격을 할텐데 막을 수단이나 있나?
이재명의 당 대표 도전은 멈출 수 없다. 멈추는 순간 자신이 죽는다는걸 너무 잘 알고 있어서다. 이재명은 당 대표 임기(2024년 8월) 전에 치르는 2024년 4월 총선도 공천권을 휘둘러 자신의 세력을 극대화하는 게 목표고, 이를 발판으로 차기 대선에 출마하는 게 최종 목표다. 그런 이재명이 당 대표를 포기한다고? 명분이 없다는 말은 하나마나한 이야기다. 명분은 만들기 나름이다. 인천 계양을 출마는 무슨 명분이 있어서 나갔나? 누가 있어 이재명에 맞설 수 있을까? 나는 없다고 본다.
(또 하나, 이낙연이나 홍영표, 전해철은 조국의 강을 건넜나? 이 강을 건너지 못하면 전선을 만들지도 못한다. 이제 와서 어떻게 건너겠는가? 처절한 반성문을 제출해야 하는데…)
11. 민주당에 이준석 같은 정치인은 있나?
이재명을 이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관문이 있다. 김어준을 비롯한 스피커들과의 결별이다. 이들과 맞서 싸울 용기 있는 정치인은 있나? 국민의힘 이준석은 그걸 해냈다. 이준석은 당 대표 취임 이후 진작부터 유튜버들과 유착하지 말 것을 공개적으로 경고했다. 그래서 우파 유튜버들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이준석이 버틸 수 있었던 건 국힘당 정치인들이 대부분 이준석 말대로 했기 때문이다. 홍준표조차 우파 유튜버들의 행태에 개탄하며 거리를 둘 정도였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김은혜가 강용석과 단일화를 시도했지만 이준석이 이를 막았다고 한다. 백번천번 이준석이 잘한 일이다. 온갖 가짜뉴스와 혐오를 유발하는 가세연과 단일화를 한다면 국힘당 자체가 가세연이 된다. 망하는 길이다. 강용석 때문에 경기도지사 선거를 졌다고 하는데 앞서 데이터를 제시하며 말했듯이 사실이 아니다. 강용석과 단일화를 했다면 김은혜는 더 크게 졌을 것이다. 이준석의 전략은 장기적으로 국힘당이 건강한 정당으로 가는 길이다. 경기도를 아깝게 지기는 했지만 국힘당 차원에서는 남는 장사다.
국힘당 주변에도 소위 스피커는 즐비하다. 그러나 국힘당은 대놓고 스피커들과 유착한 정치인이나 처럼회 같은 정치인 모임이 없다. 국민의힘이 민주당보다 훨씬 건강한 정당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민주당은 그동안 김어준한테 머리를 조아리는 정치인들은 한 트럭이지만 이준석처럼 소위 스피커들과 맞서 싸운 정치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고작해야 대선 경선 당시 신천지 개입설에 항의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다수의 민주당 당원들이 스피커들에게 휘둘리고 있는 이상 그들과의 결별은 힘들 것이다. 공천권을 쥐고 있기 떼문이다. 스피커들과 맞선다는 것은 당원들과 싸운다는 의미가 된다. 엄청난 파국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고, 이걸 감당할 수 있는 정치인은 없다. 그냥 지금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과격한 개혁추종자들이 민주당에서 더 이상 빨아먹을 단물이 없어질 때까지 말이다. 최후에는 좀비 정당이 될 수도 있다. 더구나 지난 4년 동안 당이 파쇼화되고, 온갖 일베식 혐오문화가 독버섯처럼 자라나는 동안 문제제기 하는 정치인 단 한 명을 못봤다. 지난 4년 동안에도 하지 않은 일을 갑자기 할리는 없다. 그럴 용기가 있었으면 진작에 이준석처럼 맞서 싸웠겠지.
12. 원팀론의 저주
2018년 지방선거 앞두고 느닷없이 이호철 입에서 시작한 ‘원팀론’은 민주당을 파쇼 정당으로 만들었다. 민주당 소속 정치인에 대한 비판을 내부총질로 몰아붙이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민주당을 파괴하려는 작전세력이니 똥파리니 하는 멸칭으로 악마화했던 시간이 무려 4년이 흘렀다. 이제와서 건강한 민주주의 타령하는 게 우습기도 하고 같잖기도 하지만, 평소에 하지도 않던 짓을 갑자기 한다고 될리도 없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대화와 타협, 상호 존중과 관용, 다수 의견에 대한 존중과 소수 의견에 대한 배려, 이런 게 갑자기 된다고? 아래 사진은 원팀론의 상징적인 장면이다. 원팀론을 주창한 세력이 소위 친문 핵심이라 일컫던 이호철, 양정철 등이다. 2018년 4월에 이호철 입을 통해 맥락없이, 뜬금없이 등장한 원팀론은 6월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두고 이해찬이 당 대표에 선출된 이후 이재명과 양정철, 김경수가 화기애애하게 회동을 하면서 완성됐다.
이해찬 체제의 등장은 역사의 퇴행이었다. 민주당은 민주주의를 훈련할 기회를 완전히 놓쳐버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퇴장한 이후 민주당은 줄곧 민주적 리더십을 세우는 데 실패했다. 탈권위 리더십은 매번 흔들렸다. 그래서 고작 찾은게 새로운 권위였고, 그게 이해찬이었다. 다양한 이견이 공존하는 토론 문화를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입을 틀어막았다. ‘민주주의’를 팔아먹고 여기까지 온 정당이 당내 민주주의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모습은 한심함 그 자체였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에 대한 존중을 할 준비가 안된 자들이 득실거린다는 이야기다. 이해찬 체제가 들어서면서 민주당은 더 이상 민주적 정당이 아니었다. 짝퉁 3김 시대였다.
문재인 대통령조차도 민주당 당원으로서 반복해서 강조했던 ‘원팀론’은 민주당의 민주주의를 압살했다. ‘원팀론’은 박정희 시대의 ‘총화단결’과 단 하나도 다르지 않은 체제 유지 이데올로기였다. 그 이데올로기는 오직 이재명 보호에만 작동했고, 나머지 중도 온건 노선의 정치인에 대한 온갖 조롱과 혐오에 대해서는 단 한번도 작동하지 않은 편파적이고 불공정한 이데올로기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마찬가지다. 내부총질을 폐기하자고? 거울이나 쳐다보고 말하자.
마치며
"갈등은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잘 제도화하면 시민의 자유와 강대한 국가를 동시에 가져다줄 것이다." - 마키아벨리
“자유롭고 민주적인 정치체제의 등장은 인민들이 집권당을 끌어내리기 위해 반대당을 조직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는 것, 이상이다. 모든 정당은 정치적 반대자들을 기꺼이 충성스러운 시민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에 대해 이런 차원의 존중이 없다면? 정당 간의 격렬한 경쟁이 급기야 정치체제를 붕괴시키지 말란 법도 없다.” - 샤츠 슈나이더
“정치는 갈등의 관리다. 그러므로 갈등에 대한 단편적 이해에서 벗어나는 게 급선무다. 정치 갈등은 대의명분을 놓고 벌이는 정면충돌이 아니다. 힘의 대결이 벌어지는 문제도 아니다. 기본적으로도 아니고, 대개도 아니다. 스포츠라면 모를까 심각한 문제에서 확실하게 이기는 경우도 아닌데 힘으로 맞설 사람은 없다. 어느 정도의 지성을 갖춘 사람이면 당연히 그럴 것이다.” - 샤츠 슈나이더
“정당 간의 모든 투쟁은 [대의라고 하는] 본질적 목표를 위한 투쟁인 동시에 관직 수여권을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 정당들은 관직의 몫이 줄어드는 것을 자신들의 본질적인 목표를 실현하지 못하는 것보다 더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몇몇 정당들은 순전히 관직 사냥을 추구하는 정당이 되어버렸고, 득표 가능성에 맞춰서 자신들의 핵심 정강도 바꾸어버렸다.” - 막스 베버
“정치 지도자는, 즉 지도적 역할을 하는 정치가의 명예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전적으로 스스로 책임지는 것에 기초하고 있다. 그는 이 자기 책임을 거부할 수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할 수도 없으며 전가해서도 안 된다.” -막스 베버
“권력을 향한 야심은 정치가가 일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도구이다. 흔히 '권력 본능'이라고 불리는 것이 정치가에게는 정상적인 자질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런 권력 추구가, 전적으로 '대의'에 대한 헌신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성을 결여한 채 순전히 개인적인 자기도취를 목표로 하는 순간, [정치가라는] 그의 직업이 갖는 신성한 정신에 대한 죄악이 시작된다. 왜냐하면 정치 영역에서는 궁극적으로는 두 종류의 치명적 죄악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객관성의 결여와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흔히 이것과 동일시되는) 책임성의 결여가 그것이다.” -막스 베버
“괴물들은 존재한다. 그러나 실질적인 위협이 되기에는 그들의 수가 너무 적다. 가장 위험한 것은 보통 사람들이다.” -프리모 레비
“굉장히 악한 일을 저지른 사람들조차 감히 자기 딴에는 좋은 일을 하려고 그랬다고 고백한다.” -로랑 베그
“과거는 절대 죽지 않는다. 아직 지나간 것도 아니다.” - 윌리엄 포크너
갈등을 은폐하고 싸워야 할 때 싸우지 않은 댓가를 치러야 할 시간이다. 밀린 숙제를 한꺼번에 다하기는 힘들다. 제대로 하기도 힘들다. 민주당은 너무 많은 숙제를 뒤로 밀쳐두었다. 지난 4년간 ‘이재명 리스크’도 무럭무럭 자라서 민주당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커졌다. 민주당 모든 정치인들의 자업자득이다. 다들 고생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