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앞서 올린 몽테스키외 편에 보론으로 덧붙이는 글이다.)
루소의 인민주권론이 불러온 역사의 반동
몽테스키외는 ‘권력으로 권력을 감시’하는 권력분립론을 주장했다. 동시대 철학자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는 ‘인민의 일반의지’를 근간으로 한 인민주권론을 내세웠다.
인민주권론에서는 권력분립론이 성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민이 선출한 입법권이 최고의 권력이고, 인민의 의지를 총화한 일반의지가 입법권력을 통해 발현되기 때문이다. 입법권을 넘어서는 권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극단의 민주주의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루이 14세 자리에 일반의지의 결정체인 입법권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즉 루이 14세 같은 절대왕정 권력을 입법권을 가진 사람이 갖게 된다는 이야기다. 루소의 인민주권론에 의하면 절대왕정에 버금가는 절대권력이 탄생한다. 구 소련 공산당 총서기를 지낸 스탈린, 흐루쇼프, 브래즈네프를 통해서 봤고, 북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의 조선노동당을 당수인 김일성 가문, 중화인민민주주의공화국의 공산당 총서기인 시진핑을 통해 보고 있다.
잠깐 옆길… 중국은 사회주의 건설 운운하는 데 솔직히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천박한 자본주의사회가 중국 아닌가? 중국에 무슨 사회주의가 있나? 자본주의 국가인 대한민국 발끝도 못따라오는 복지시스템을 가진 중국이 무슨 사회주의 운운인가? 전 세계에서 빈부격차가 가장 극심한 나라 중 하나인 중국이 무슨 사회주의 떠드나? 공산주의 그림자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데 무슨 공산당 간판을 걸고 있나? 하긴 우리나라에도 더불어도 없고, 민주주의도 없는 정당이 더불어민주당이라는 간판을 걸고 있고, 민주주의와 정의가 전혀 없었지만 민주정의당 간판을 내건 정당도 있었다.
북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도 북조선왕국으로 이름을 바꿔야 하지 않겠나?
루소의 인민주권론의 폐해가 이렇게 크다. 루소 입장에서는 굉장히 억울할 수 있겠지만 어쩌겠나? 자기가 만든 이론을 바탕으로 이런 전체주의 사회를 건설한 사람들이 한 트럭이다.
루소가 말하는 ‘일반의지’에 대해 관념적, 형이상학적 논리를 가진 사람들은 아직도 가능한 이론으로 설명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과학적 유물론으로 봐도 일반의지는 불가능한 상상의 산물이다.
일당독재가 아닌 다당제인 정치체제에서는 일반의지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실제로 중국과 북한, 쿠바 등 일당독재 국가에서 일반의지 운운하며 인민주권론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진핑의 권력은 주석직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공산당 총서기라는 직책에서 나오고, 김정은의 권력도 조선노동당 총비서라는 직책에서 나온다. 우리나라도 과거 전대협 의장, 한총련 의장, 민주노총 위원장이 인민주권론을 바탕으로 지도체제를 구축했다. 지금 민주노총은 어떤지 모르겠다.
민주당의 의사결정 체제에도 흔적이 남아 있다. 당 대표한테 권한을 위임하는 규정이 그렇다. 중앙위원회, 상임위원회, 대의원대회 등에서 순차적으로 권한을 위임해서 최종적으로 당 대표한테 위임하면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에 부합하게 된다. 그러나 결정은 당 대표가 알아서 하는거다. 이게 사실은 북한의 노동당이나 중국 공산당 의사결정 과정과 비슷하다. 위임에, 위임에, 위임을 몇번 거치면 당 대표 혼자 마음대로 결정해도 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물론 위임을 함부로 하지 않으면 되겠지만 당 대표가 어떤 사람이냐, 중앙위원회나 상임위원회, 대의원대회가 어떤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지에 따라 얼마든지 독재체제로 변할 수 있다.(박정희의 유신정권 당시 유정회, 전두환이 만든 통일주체국민회의가 그런 시스템이다. 3김이 좌지우지했던 정당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당 총재가 독재자로 군림했다.)
루소의 인민주권론의 위험성은 칸트도 이미 경고한 바 있다.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루소 덕에 인간이 지닌 본질적 고결함을 깨닫게 됐다. 루소가 나를 바른길로 이끌었다”고 말할 정도로 루소를 좋아해서 서재에 초상화를 걸어놓을 정도였다. 그런 칸트도 “루소가 주장한 민주적인 통치는 반드시 전제주의로 흐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프랑스 혁명을 말아먹은 로베스피에르와 자코뱅당
어떻든 인민주권론은 필연적으로 독재 정치, 전체주의 정치를 불러온다. 역사가 증명했다. 로베스피에르가 혁명을 배반하고 공포정치라는 반동으로 달려갈 때 이론적 근거도 인민주권이었다. 1793년 로베스피에르는 공안위원회를 만들어서 모든 권력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자코뱅당보다 덜 개혁적이면 모두 반개혁 세력으로 몰아 숙청했다. 당시 로베스피에르는 온건개혁파인 지롱드파를 비롯해서 자코뱅을 제외한 모든 혁명 참여세력에 반개혁 세력 딱지를 붙여서 30만 명을 체포하고 그 중 1만 5천명을 단두대로 죽였다.
이런 공포정치를 펼쳤던 자코뱅당은 1778년에 죽어 다른 곳에 묻혀있던 루소를 ‘프랑스 혁명의 아버지’라 부르면서 팡테옹 국립묘지로 이장했다. 루소 무덤 맞은 편에는 루소와 사상적으로 대립했던 볼테르 무덤이 마주보고 있다.(아래 이미지는 루이 16세가 처형당하는 장면이다.)
자코뱅당은 심지어 프랑스혁명을 열렬히 지지했던 토마스 페인(Thomas paine, 1737-1809)한테 사형 선고를 내리기도 했다. 페인은 프랑스 혁명에 앞서 일어난 미국 독립혁명 당시 영웅이었다. 미국 독립혁명을 옹호한 <인권>이라는 글을 발표했는데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미국 인구가 250만 명이었는데 페인의 글을 수 십만 명이 읽었다고 한다. 미국 2대 대통령을 지낸 존 애덤스는 “페인의 펜이 없었다면 조지 워싱턴의 칼은 쓸모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나자 미국에서 프랑스로 건너가서 활동했는데, 페인이 사형선고를 받은 이유는 루이 16세 처형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페인은 미국으로 유배를 보내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이후 루이 16세는 바로 죽이지 않았다. 로베스피에르가 공포정치를 시작한 1793년에 단두대로 죽였다. 페인은 감옥에 갇혔다가 1년 뒤인 1794년 온건개혁파가 로베스피에르 축출에 성공하면서 풀려났다.
이 당시 자코뱅당의 공포정치는 프랑스혁명에 박수치고 환호했던 정말 많은 사람들이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당대 지식인들 거의 모두가 프랑스혁명 비판
대표적으로 오늘날에는 보수주의 철학자로 널리 알려진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1729-1797)는 프랑스 혁명에 대해 "감탄해 마지않는 정신이 깃든 멋진 광경"이라고 찬사를 했다가 자코뱅당의 공포정치를 목도한 이후 크게 분노하여 <프랑스 혁명에 대한 성찰>이라는 책을 쓸 정도였다. 버크는 형이상학적 관념에 매달린 루소 같은 자들로 인해 혁명이 결국 테러, 국왕 시해, 대량 학살, 무정부 상태, 그리고 마침내 독재 정부로까지 이어질 것이라도 내다봤는데 버크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버크가 보수주의 철학자로 널리 알려져서 한국의 보수 같지 않은 보수를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버크는 영국이 미국 식민지를 강압적으로 다루는 방식도 비판했고, 영국의 카톨릭교도들의 종교 자유도 주장했다. 사형제도를 비판했고, 제한없는 국왕의 권력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버크는 폭력적인 혁명을 방지하기 위해서 점진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게 최선이라고 주장했다. 한국 보수주의자들이 에드먼드 버크 정도만 따라 해도 장기집권의 길은 활짝 열릴 것이다.
프랑스 혁명 당시 토마스 페인처럼 주변 국가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대거 프랑스에 와서 혁명에 동참했는데 자코뱅당은 이 사람들조차 질리게 만들었다.
“여성은 더 남성다워져야 한다”는 말로 유명한 페미니즘의 선구자 메리 올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 1759-1797)는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를 지켜본 후 “파리에서 자유라는 대의를 얼룩지게 한 그 피를 생각하면 비통함에 잠긴다”며 슬픈 감정을 표현했다. 루이 16세가 처형당하는 현장을 목격한 뒤에는 "루이 왕이 평소 그의 성격으로 미루어 짐작한 것보다 더 품위 있는 모습으로 사륜마차에 몸을 싣고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고 말하기도 했다.
인간에 대한 연민이 사라진 혁명에 무슨 박애정신이 있고, 자유가 있고, 평등이 있겠는가? 한국에서도 촛불혁명 이후 민주당내 강경파들을 보라. 복수의 감정, 원한과 분노에 휩싸인 대중들이 죽창을 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 그대로였다. 이런 대중의 감정을 여과하는 역할을 해야 할 정치인이 같이 죽창 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은 한국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한 상태인지를 증명했다.
로베스피에르가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 후에도 프랑스는 질서를 잡지 못해 극심한 혼란상을 보였다. 프랑스 혁명이 발발한 이후 10년 동안 사회는 혼란 그 자체였다. 프랑스 민중은 혁명에 진절머리를 치고 있었다. 이 상황을 정리한 사람이 바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다. 그 나폴레옹이 독일로 진군해 올 때 “말을 탄 세계 정신이 오고 있다”고 말했던 프리드리히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은 프랑스 혁명에 대해 “순전히 추상적인 이상에서 출발해 구체제를 붕괴시키는 데 그쳤을 뿐 새로운 체제를 수립하지는 못한, 소극적이고 파괴적인 혁명이었다”고 비판했다. 헤겔의 비판은 2017년 이후 한국에도 적용된다. 촛불혁명 이후 새로운 체제는 만들었나? 전혀 못만들었다. 오히려 극심한 적대적 분열과 갈등이 판치는 과거로 되돌아가는 반동이 일어났다.
최종적으로 프랑스혁명을 완성시킨 사람들은 자코뱅당의 로베스피에르 같은 과격하고 급진적 개혁주의자들이 아니었다. 더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며 공감대를 얻기 위해 노력한 온건한 개혁주의자들이었다.
1789년 혁명 이후 제 3공화국이 수립되는 1870년까지 80년의 시간이 더 걸린 것은 가진 역량이 감당하지도 못하는 목표, 혁명에 참여한 다른 모든 주체를 배척한 독단과 독선, 인간에 대한 연민과 관용이 결여된 잔인함과 폭력성, 자유, 평등, 박애를 실천하지 않고 구호로만 떠들어 댄 비인간성과 야만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촛불혁명 말아먹은 더불어민주당 내 극렬개혁파
이쯤되면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이 떠오르지 않는가?
2016년 대한민국 거의 모든 국민이 함께 했던 촛불혁명은 이미 죽은지 오래다. 광화문을 가득메웠던 대한민국 국민들이 전부 민주당 지지자들이었나? 아니 더 정확하게는 민주당 내에서도 강경하고 급진적 개혁을 요구하는 사람들만 촛불을 들었나? 마치 자기들만 혁명 주체세력인냥 다른 모든 세력을 반개혁으로 몰아부치는 행태가 자코뱅당의 로베스피에르와 닮지 않았나?
며칠전부터 몽테스키외와 토크빌 사이에서 이 주제로 글을 쓸려고 했는데 마침 타이밍도 정확하게 정청래가 내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글을 올렸다.
우선 친문-반문 구분은 적절치 않다. 민주당 정치인 모두가 친문이라는 주장에 동의하는 바다. 문재인 대통령, 그리고 청와대 수석과 비서관, 행정관, 더불어민주당과 국회의원들 모두 원팀이 되고자 했고, 두드러지게 대놓고 반문질을 한 사람도 없다. 문재인 대통령도 가리지 않고 원팀으로 함께 했다. 그러니 친문-반문 구별은 불가능하다.(친문이 누군지 말해보라. 무슨 기준으로 친문을 감별할건가?)
친명-반명 구분은 가능하다. 지금 그렇게 분리되고 있다. 그런데 정청래는 개혁과 반개혁으로 가르고 있다. 전형적인 로베스피에르식 구분이다. 정청래의 말은 자기는 개혁적이라는 전제를 깔아놓고 있다. 로베스피에르 사례로 말하자면 정청래 같은 인간들이야말로 혁명의 반동분자 중에 최악질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민주당에 도대체 누가 반개혁적인가? 전형적인 매카시즘이다. 실체 없는 불특정인에게 딱지를 붙이는 행태, 누구든지 빨갱이로 몰릴 수 있고, 누구든지 프랑스 혁명의 반동분자로 몰려 단두대에 설 수 있고, 누군든지 민주당내 반개혁으로 몰릴 수 있는 최악의 매카시즘이다.
정청래의 행태는 새로운 것도 아니다. 이재명에 대한 비판이 시작된 2018년 4월 이후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반복되어 이제는 민주당의 문화가 되어 버린 혐오, 조롱, 폭력의 문화다. 그동안 이낙연, 홍영표, 전해철, 박광온, 김종민, 노영민, 이광재 등 온건개혁파를 향한 수많은 혐오와 조롱을 수반한 폭력적 언행은 일베처럼 자연스러워졌다. 민주당이 일베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2년 대통령 선거는 촛불혁명을 배신한 반혁명 반동분자들을 심판한 선거였고, 지방선거는 그 연장전이었다. 민주당은 여전히 자신들만이 선이라며 자기들 이외의 대한민국 국민들을 반개혁 세력으로 몰아가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촛불혁명을 독점하며 혁명을 말아먹은 반동세력을 마지막 순간까지 심판해야 한다. 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끝날 수도 없다. 촛불혁명의 반동세력이 여전히 준동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