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좌로부터 2위 안나 게뉴세니에(러시아), 1위 임윤찬(한국), 3위 드미트로 초니(우크라이나), Cliburn Foundation 제공
역대 최연소, 청중상·현대곡상까지 3관왕
선우예권 이어 두 대회 연속 한국인 우승
피아니스트 임윤찬(18·한국예술종합학교)이 세계적 권위의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18일(현지시간) 폐막한 미 텍사스주 포트워스 제16회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임윤찬은 5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2004년생인 임윤찬은 이 콩쿠르의 출전 제한 연령(만 18~31세) 하한인 만 18세로, 이 대회 60년 역사상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웠다. 2위는 러시아의 안나 게뉴세니에(31), 3위는 우크라이나의 드미트로 초니(28)가 차지했다.
임윤찬은 전 세계 클래식 팬 3만명이 참여한 인기투표 집계 결과에 따라 청중상도 받았다. 또 현대곡 연주상까지 차지해 3관에 올랐다. 또한 지난 대회 (2017년) 선우예권에 이어 한국인 연속 우승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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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찬은 콩쿠르 1위 부상으로 상금 10만달러(약 1억3천만원)와 함께 음반 녹음 및 3년간의 세계 전역의 매니지먼트 관리와 월드 투어 기회를 갖게 된다.

- 클라이번 콩쿠르 결선 임윤찬 연주, 미국 텍사스 베이스 퍼포먼스홀, Cliburn Foundation 제공
18세 천재, 결선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무대
지난 14~18일 포트워스 베이스 퍼포먼스홀에서 열린 결선 무대에서 임윤찬은 콩쿠르 심사위원장인 마린 앨솝의 지휘로 포트워스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함께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3번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 두 곡을 연주했다.
그중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무대는 그만의 신들린 듯한 연주로 타 참가자들을 압도하였고, 전 세계 음악팬들에게 그의 존재감을 강렬히 각인시켰다. 협연을 지휘한 마린 앨솝조차 감정에 겨운 듯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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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휘자 마린 앨솝(좌), 임윤찬(우) Cliburn Foundation 제공
준결선 최대의 하이라이트,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 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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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결선에서 다른 참가자들이 작곡가 2-3명의 곡을 준비하는데 반해 임윤찬은 오직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Transcendental Etudes)만으로 승부했다. 초절기교 연습곡은 피아노의 대가 리스트가 평생에 걸쳐 다듬고 작곡한 작품으로 모두 12곡에 연주시간만 60분이 넘는다. 연습곡이라는 제목과는 달리 기교적으로 피아노 곡 중 최대의 연주 난이도를 가진 곡이기도 하다.
조금의 실수에도 민감한 콩쿠르 무대에 이런 난곡을 준결선에 들고 나온 건 일종의 승부수이자 자신의 음악관이 뚜렷했기 때문이다. 임윤찬은 무대에서 65분 동안 엄청난 집중력과 기술적 완벽함으로 이 곡을 완주했다. 이를 보는 사람이 아무런 기술적 어려움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연주가 대단했고, 무대에서 연주에 대한 엄청난 몰입도를 보여주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무대에 흠뻑 빠지게 하였다. 이 준결선 무대에서 그는 청중과 심사위원들, 그리고 온라인 중계를 보던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큰 관심과 찬사를 받았다.

- 임윤찬, 반 클라이번 콩쿠르, Cliburn Foundation 제공
천부적 재능과 감각, 철저한 준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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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찬은 엄청난 연습량으로 유명한데, 콩쿠르 기간 내내 주최 측이 연결해 준 텍사스 포트워스 현지 호스트 집에서 묵으며 새벽4시까지 잠도 안자고 피아노 연습에 몰두했다고 한다. 그동안 국내에서 괴물 신인이라는 별명도 얻었고, 폭발적인 무대가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사실 그는 천부적인 무대 체질과 더불어 치밀한 전략과 대범함도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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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찬은 콩쿠르에 앞서 국내 무대에서 작년 11월 경기유스필하모닉, 12월 광주시향, 올해 5월 강남심포니 등 총 3차례에 걸쳐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공연했다. 콩쿠르 결선곡으로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을 점찍어 두고 미리 예습을 해본 셈이다. 11월 경기유스필하모닉 협연 때는 다소 급하고 설익은 부분도 있었으나 연주를 거듭할 수록 차차 연주력이 향상되었고, 그 결과 이번 결선에서는 패기와 속도, 음악적 완급 조절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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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협주곡 1악장의 긴 카덴차(협주곡에서 반주 없이 독주자 홀로 화려하고 기교적인 연주를 과시하는 대목)도 가볍고 간결한 오리지널 버전과 화려하고 장중한 Ossia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그는 그중 전자를 택했다. Ossia는 이탈리아어로 '또는' (or rather)을 뜻하는 단어로, 곡의 특정 부분에서 작곡가가 두 가지 이상의 아이디어가 있을때 해당 부분 악보에 다른 버전을 기입해 놓고 연주자로 하여금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대개의 피아니스트들은 화려한 버전(Ossia)을 선택하는데 비해, 임윤찬은 라흐마니노프와 호로비츠가 애용했던 쉽고 간결한 오리지널 버전으로 연주했다. 라흐마니노프가 표현하려던 오리지널 곡 분위기를 청중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한다.
마지막 곡 연주 전날 피아노 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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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결선 무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연주를 앞두고 연주할 피아노를 바꾸었다. 이 콩쿠르에서는 두 가지 피아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데, 임윤찬의 선택은 그 전까지 함부르크산 스타인웨이 피아노였다. 그런데 그와 대부분 다른 연주자들이 사용하던 함부르크산 스타인웨이 피아노 대신 결선 전날 뉴욕산 스타인웨이 피아노로 바꾸기로 결정하고 연주한 것이다. 최고의 피아노로 알려진 스타인웨이 피아노는 뉴욕과 함부르크 두 군데에서 제조되는데, 큰 틀에서 사운드는 비슷하지만, 디테일하게 보자면 소리나 터치(액션)의 느낌이 다르다. 함부르크산 스타인웨이가 좀 더 화려하고 무거운 사운드를 잘 표현하는 반면, 뉴욕산 스타인웨이는 그에 비해 수수하고 무색 무취에 가까운 사운드다. 마치 양념 갈비와 생갈비의 차이라고나 해야할까. 그만큼 사운드 취향이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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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피아니스트 호로비츠가 뉴욕산 스타인웨이를 고집해서 유명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공연장의 97%를 함부르크산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차지하고 있다. 임윤찬은 그간 뉴욕 스타인웨이를 협연 무대에서 연주해 볼 기회가 없었을 텐데, 현장에 있던 뉴욕 스타인웨이를 접해 보고는 자신의 연주 스타일과 라흐마니노프 곡 특성에 어울린다고 판단한 것 같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은 초인적인 기교와 복잡한 구성으로 유명한데, 결선 무대 마지막 곡으로 이런 난곡을 올리며 평소 안 쳐본 피아노를 선택한다는 건 연주 측면이나 심리적 측면에서 모험이다. 결과적으로 무색무취의 뉴욕산 스타인웨이가 자칫 오버할 수도 있는 그의 터치를 고르게 받아서 균일하게 표현해 주어 오케스트라와 더 조화롭게 어울리게 해준 느낌이다.
동서 문화의 가교, 반 클라이번의 업적을 기리는 대회
유럽권에 세계 최정상의 쇼팽 콩쿠르, 차이콥스키 콩쿠르가 있다면, 북미권을 대표하는 콩쿠르가 반 클라이번 피아노 콩쿠르다. 냉전 시절이던 1958년 소련에서 열린 제1회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하여 일약 '미국의 영웅'이 된 동시에 동서 진영간 긴장을 넘어 문화의 가교를 놓은 미국의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1934~2013)의 업적을 기리는 대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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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시작되어 4년 주기로 열리는 이 대회의 역대 우승자에는 라두 루푸(1966년), 올가 케른(2001년) 등이 있다. 바로 직전 대회인 2017년에는 우리나라 선우예권이 우승하였고, 코로나로 한 해 늦게 열린 이번대회에서 임윤찬이 한국인 연속 우승이라는 신기원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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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상, 하 : 클라이번 콩쿠르 결선이 열린 텍사스 베이스 퍼포먼스 홀, Cliburn Foundation 제공

반 클라이번이 소련에서 성공하고 동서 문화의 가교를 놓은 영향으로 그간 클라이번 콩쿠르에는 전통적으로 러시아 참가자가 많았고 수상자도 많았다. 그래서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불구하고 주최 측은 러시아 참가자를 제한하지 않겠다고 명백히 밝힌 바 있다. 그래서인지 이번 대회 본선 진출 30명 중 러시아 출신이 6명으로 가장 많았다. 그중에서도 일리야 쉬머클러, 안나 게뉴세니에 등의 강자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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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임신 6개월의 몸을 이끌고 러시아 피아니즘이 투영된 아름다운 연주를 보여준 투혼의 안나도, 아시아계 흑인 스티븐슨의 화제성도, 리스트 초절기교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3번으로 압도적이고 완벽한 무대를 보여준 18세의 한국 토종 피아니스트 무대에 미치지 못했다.


- 2위를 차지한 안나 게뉴세니에(러시아). 남편 루카스 게뉴서스 역시 피아니스트로 쇼팽 콩쿠르, 차이콥스키 콩쿠르 2위 수상자이기도 하다. Cliburn Foundation 제공

- 유일한 미국인 결선 진출자인 클레이튼 스티븐슨. 하버드대 재학 이력과 빼어난 연주, 아시아계 흑인으로 화제를 모았다. Cliburn Foundation 제공
순수 국내파가 해낸 뜻 깊은 결과, 그리고 피아노에 대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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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핀란드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 양인모(바이올린) 우승, 6월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최하영(첼로) 우승에 이어 북미 대륙 최고의 콩쿠르에서 임윤찬(피아노)이 우승함으로써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서 한국은 이제 그 위상이 굳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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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임윤찬은 다른 외국 유학 피아니스트들과 달리,이른바 순수 국내파다. 스승인 손민수 교수에게 발탁되어 예원중학교 졸업 후 한예종에 영재로 입학하고, 어린 나이 탓에 아직 해외 유학 경력이 없다. 하지만 그는 특정한 학파나 기존의 틀을 벗어난 자신만의 음악 스타일로 이번 콩쿠르에서 세계 음악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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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윤찬, 반 클라이번 콩쿠르, Cliburn Foundatio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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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찬은 아직 만 18세다.
그는 이번 콩쿠르 우승 후 인터뷰에서 “사실 제 꿈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그냥 산에 들어가 피아노와 사는 것인데, 그러면 수입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라며 “커리어에 대한 야망은 전혀 없다”고 할 만큼 순수한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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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에서 2015 쇼팽 콩쿠르 우승 직후 조성진이 바르샤바 현지에서 필자 회사와 가진 단독 인터뷰가 데자뷔처럼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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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꿈은 유명해지는 게 아니고 그냥 좋은 음악 연주하는 피아니스트가 되는 거에요. 큰 욕심일 수 있겠지만, 좋은 콘서트홀이 있는 도시에서 천5백명만 저를 알면 그걸로 충분해요. 그 이상의 명성은 부담스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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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옛날 18세의 폴리니가 쇼팽 콩쿠르 우승 직후 한동안 활동을 않고 그의 실력을 쌓는데 주력 했듯이, 이제 임윤찬에게는 단시간의 연소 대신, 대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긴 발전의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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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배우고 다듬고 숙성시켜 세계적인 음악가의 반열에 오르기를 필자는 기대한다.
#토마토클래식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