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5일) 아침, 일하면서 각종 투자정보 확인하기 위해 종일 켜놓는 미래에셋증권 홈트레이딩시스템(HTS) 카이로스에 문제가 생겼다. HTS를 실행시킨 후 접속 과정에서 멈추고는 에러 메시지가 떴다.
몇 번을 반복하다가 안 돼서 고객센터에 문의전화를 걸었다. 상담원은 증상을 물어보고 원격으로 직접 상황을 파악한 후 보안프로그램 때문에 생긴 문제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고객의 컴퓨터에 설치된 보안프로그램이 미래에셋증권 프로그램을 악성으로 판단해 차단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도 그렇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HTS에 접속을 하려면 보안프로그램을 삭제해야 한다고 안내했다. 보안프로그램 중 어떤 게 문제를 일으킨 것인지도 모르고 그냥 삭제 후 다시 접속하란 말만 되풀이했다.
회사에서 지급 받은 노트북에 깔린 프로그램을 내 마음대로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또 워낙에 많은 곳을 드나들며 자동으로 깔린 보안 관련 프로그램이 많아 이걸 다 삭제해도 괜찮은지 알 수도 없고, 전부 삭제하고 나면 취약한 보안 문제는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몰라 일단 급한 대로 스마트폰과 다른 투자사이트를 찾아가며 하루를 넘겼다.
이튿날 6일 아침, 역시나 미래에셋증권 HTS는 똑같은 증상으로 접속이 되질 않았다. 또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 전화를 받은 상담원은 하루 전의 상담원보다 경험이 많은 것처럼 느껴졌다. 일단 그는 어디에서 발생한 문제인지를 특정했다.
상담원은 원격으로 내 노트북을 살펴보더니 비트디펜더(Bitdefender)라는 외국계 보안회사의 프로그램을 가리켰다. 어제와 오늘 똑같은 증상으로 문의전화를 걸어온 이용자들의 공통점이 해당 프로그램이 설치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해당 프로그램이 업데이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미래에셋의 프로그램을 악성으로 인식하게 된 것 같다고 했다.
문제의 원인은 파악이 됐는데 답은 변하지 않았다. 이 상담원도 똑같이 그 프로그램을 삭제해야 쓸 수 있다고 안내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실제로 해당 파일은 회사에서 기자들에게 노트북을 지급할 때 세팅해준 보안프로그램이었다. 노트북을 한두달 전 새로 지급받았고 보안프로그램 때문에 접속이 안 된다거나 하는 문제는 다른 금융회사들에서도 가끔 발생한다. 문제는 오직 해당 프로그램을 삭제해야만 HTS에 접속,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물었다. 만약 문제가 된 보안프로그램을 만든 회사가 외국 기업이 아니라 안랩 같은 국내사였다면 어떻게 했겠냐고, 아마도 안랩에 연락해 여차저차 해서 우리 프로그램이 당신네 백신에 의해 차단됐으니 풀어달라고 요청하지 않겠느냐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춘 미래에셋이 설마 외국 기업이란 장벽 때문에 그런 절차는 밟지도 않고 무조건 고객에게 프로그램을 삭제하고 쓰라고 안내를 하는 것이냐고?
계속되는 질문에도 “죄송합니다”로만 일관하기에 기자 신분을 밝히고 고객센터의 공식 대응이 무엇인지를 질문했다. 상담원 개인이 이에 대해 무슨 대답을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고객센터 책임자와 통화를 요구했으나 응하지 않았다. 대신 무얼 물어볼 때마다 연신 누군가에게 다시 묻고 답하느라 시간이 걸렸다. 센터에 팀장이 있다는 데도 팀장은 전활 받지 않았다. 고객센터와 연락을 하는 미래에셋증권 측 담당부서를 알려달란 말도 “죄송합니다”로 묵살했다. 나중엔 본사 직원과 3중으로 원격 연결을 해보겠느냐고 제의해 왔다. 기자라서 다른 고객들이 할 수 없는 서비스를 받을 이유는 없고, 정말로 삭제하란 대답 외엔 해줄 말이 없느냐고 재차 확인했으나 그렇다는 답만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다시 물었다. “미국 보안회사 측에 연락해서 문제를 해결하겠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테니까 그 전에 꼭 HTS를 써야 한다면 일단 보안프로그램을 삭제하고 쓰다가 나중에 문제가 해결되면 다시 깔고 사용하시면 어떨까요, 이렇게 답하는 게 정상 같은데, 그건 불가능하고 오로지 보안프로그램을 삭제하고 쓰라고 답하는 것이 고객센터의 공식 입장이냐?” 했더니 또 한참을 누군가와 얘기한 후 “그렇다”고 답했다.
이게 국내 1위 증권사의 고객 응대라니. 처음엔 내가 뭘 잘못 들은 줄 알았고 나중엔 황당했다.
이렇게 된 이상 기자 개인의 문제는 아니었다. 이틀간 똑같은 증상으로 받은 전화가 여러 통이라고 했고, 다들 똑같이 보안프로그램을 삭제해야만 쓸 수 있다고 안내를 받았을 것이다. 고객으로서는 그 말에 따르든지 이용하지 말든지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미래에셋증권 홍보실에 전화해 이틀 동안 있었던 일을 설명하고 미래에셋증권의 공식 답변을 요구했다. 홍보 담당자는 오간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고객센터에 연락해 보겠다며 통화한 상담원의 이름을 알려달라 했고, 들은대로 아무개 씨라고 알려줬는데 그런 직원이 없단다. 분명히 통화를 끝내면서 이름을 물었고 받아 적었다.
아무튼, 몇 시간이 지난 후 연락이 왔다. 고객센터와 본사 IT 담당부서 모두 통화했다고 한다.
이런 일이 발생할 경우의 매뉴얼은, 해당 보안회사 측에 전화 또는 메일, 홈페이지 게시판 등을 보내 협조를 요청한다고 한다. 이게 상식이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끔씩 발생하는 일로, 문제 해결 때까지 발생하는 고객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회사가 신속하게 대응해야 하는 일이다.
문제는 담당자들이 매뉴얼대로 문제 해결을 하려 한 것이 아니라 고객에게 피해를 주는 방식으로 때우려 했다는 사실이다. 거의 정답을 알려주며 답을 요구하는 데도 보안프로그램 삭제만 앵무새처럼 반복을 했으니 황당할밖에. 더구나 미래에셋증권 홍보실은 고객센터 상담원이 그렇게 답했을 리가 없다며 애써 부정했다. 고객센터에 전화해 31분 동안 묻고 또 묻고 한 이유가 그 황당한 대응 때문이었음을 외면하고 싶겠지만, 사실이다.
HTS를 켜야 일을 할 수 있고 미래에셋증권이 답변한 그 일처리가 언제 이뤄질지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나도 해당 프로그램을 삭제할 수밖에 없었다. 노트북을 지급한 회사 지원부서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삭제할 때도 비밀번호가 필요한 보안프로그램이었다. 작은 보안회사도 아니었고 기업들도 꽤 많이 쓰는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오늘은 문제 발생일로부터 사흘째다. 이제 나는 HTS 접속에 문제가 없으나 해당 프로그램이 깔려있는 고객들은 오늘도 똑같은 안내를 받았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