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예람 중사 사망사건'에 대한 '100일 수사'가 끝났습니다. 초동수사에서 가해자 장 모 중사에 대한 불구속 수사를 지휘했던 윗선 규명은 실패한 점은 아쉽습니다. 그러나 유족 측의 말처럼 이 중사를 죽음으로 내 몬 원인이 대대장·중대장 등 직속상관들과 공군 공보장교 등 군간부들의 2차 가해 때문이었다는 점 등을 밝혀 낸 것은 성과로 평가됩니다. 이번 사건을 수사한 '안미영 특검'은 최초의 군범죄 사건에 대한 특검인 동시에 최초의 '여성 특검'이라는 기록도 있습니다.

특검팀 수사에서 '2차 가해' 사실과 가해자를 특정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심리부검(Psychological autopsy)'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용어이지요. 그렇다면 심리부검이란 무엇일까요. 일단 학술적 개념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살자가 생전 남긴 글이나 지인과의 면담 자료를 수집해, 자살에 이르기까지의 행적과 심리 상태를 파악하는 작업. 심리부검을 통해 규명된 자료들은 자살을 예방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데 사용."
"사망자의 죽음과 관련한, 혹은 그 죽음을 유발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정신행동적인 요인들을 규명하는 것"
유서가 없는 대부분의 자살 사건은 통상 변사사건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일단 타살 흔적이 없고, 다른 사람과의 원한관계나 채무관계가 없으면 수사기관도 더 이상 수사를 하지 않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유족들이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물증’이 없으니까요.
정신적 폭력에 의한 살해
그러나 그 자살이, 물리적 살인이 아닌 누군가의 정신적 폭거에서 비롯됐다면 그것은 자살일까요, 아니면 타살일까요. 그 인과관계를 밝혀가는 것이 바로 심리부검입니다.
목적은 크게 두가지. 하나는 '사망의 원인으로서 자살 여부를 감별'하는 것, 다른 하나는 '자살로 판명된 사례에서 사망자의 특징을 총체적으로 규명함으로써 자살의 위험요인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여러 논문을 보면, 심리부검의 도구는 초기 22개부터 55개까지 늘어났다가 최근에는 자살과 가장 밀접한 16개 문항으로 추려졌습니다. 이를 다시 개념적으로 추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망자의 △인적 정보 △사망 방법 △가족력 △질병 △음주습관 및 약물 복용 이력 △이전 자살 시도 여부 △재정상태 △대인관계 △사망당시 특징
이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는 사망자의 가족과 친구를 비롯해 학교나 직장에서 함께 지내던 사람들과의 심층적인 면담내용, 사망자의 정신질환 및 신체질환에 대한 의료기록, 경찰의 수사기록, 평소 성격, 생활사건에 대한 세밀하고 광범위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전문가들은 특히 자살하기 수시간에서 수일 전까지 있었던 일에 대한 정보가치가 크다고 평가합니다.

심리부검에 대한 기원은 여러가지 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중앙심리부검센터는 유대계 미국 심리학자인 에드윈 슈나이드먼(Edwin S. Shneidman·사진)이 1958년 심리부검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는 점에서 심리부검의 창시자라고 소개합니다. 슈나이드먼은 사우스캘리포니아(Southern California)대학교 교수(1958~1960)이자 미국 최초의 포괄적 자살예방센터 설립자이기도 합니다.
심리부검의 기원
한편, 2015년 국내에서 발표된 논문 <심리부검 : 우리나라에서 향후 방향에 대한 검토 및 고찰>을 보면, 워싱턴(Washington) 대학교 의과대학의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인 Robins E. 등 학자 6명이 1956~1957년에 걸쳐 자살 사망자들에서 정신질환을 비롯한 관련 요인들을 체계적으로 조사한 것이 현대적 의미의 최초의 심리부검으로 나와 있습니다.
1934년~40년 뉴욕 경찰 93명이 연속적으로 자살하자 미국 정부가 심리부검을 처음 실시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요컨데 1950년대 활동한 심리학자들의 연구산물인 '심리부검'은 워싱턴대 교수들이 실체적 작업을 먼저하고 2년쯤 뒤 슈나이드먼이 '심리부검'이라는 명칭을 붙여 정형화 했다고 이해하면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심리부검'은 원래 1950년대 시작된 미국의 자살예방 활동의 일환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시작된 '심리부검'은 지금까지도 영국과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자살예방 활동의 중요 정책적 기법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핀란드 연구 결과를 보면 1990년대 중반 1년간 전체 자살자들 중 80%가 정신질환을 알았던 전력이 있었음을 확인했는데 이 때 쓰인 기법이 이 '심리부검'입니다.
한국에서는 2007년 12월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우리 정부기관으로는 처음으로 '심리부검' 기법을 이용한 진상규명을 시작했습니다. 2년 뒤 한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자살예방에 '심리부검' 기법을 사용하게 됩니다. 보건복지가족부·한국자살예방협회가 함께 한 <자살사망자 심리적 부검 및 자살시도자 사례관리서비스 구축방안에 대한 연구>가 그것입니다. 이 연구는 2009년 3월 시작돼 그해 12월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당시 연구팀은 원인불명의 자살사건 15건 중 7건의 동기를 밝히는 데 성공했습니다. 보건복지부가 2차 자살예방대책 5개년 계획을 발표한 때도 이 때입니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베이징 자살연구예방센터에서 개발한 심리부검 조사 방식을 수정·보완해 경찰과 함께 기준을 확립했습니다.
‘법적인 영역에서의 자살’
심리부검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법적 영역에서의 자살'까지 영역이 확대됩니다. 주목해야 할 부분인 심리적 영역에서의 심리부검은 자살의 동기 규명 선에서 대부분 끝이 나지만, 이것이 법적 영역으로 들어오게 되면 관계자들의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적인 증거가 됩니다.
다시 말해 법적 영역에서의 심리부검은 자살에 이르게 한 사람을 찾아내 특정하는 내비게이션(navigation)인 셈입니다. 해당자는 형법상으로 최소한 명예훼손, 민사상으로는 불법행위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것이 법조인들의 지적입니다. 공직자의 경우에는 피해자와의 관계에 따라 직무유기·공무상비밀누설 등 혐의도 적용될 수 있지요. 물론 민사상 책임은 별도입니다.
이 중사의 20전투비행단 소속 시절 중대장이 바로 심리부검을 통해 특정된 2차 가해자입니다. A중대장은 이 중사가 전출 간 15전투비행단 중대장에게 '이 중사가 좀 이상한 사람이다. 20전투비행단 관련 언급만 해도 고소하려고 한다'고 거짓말 했습니다. 이 중사의 심리를 부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이전에는 없던 자살 위험이 강제추행 직후 발생해 급격하게 고위험군에 이르렀고 15전투비행단 전입 후 증상을 더 악화시키는 가해를 경험하며 심화된 좌절감과 무력감으로 피해자가 자살에 이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 A중대장은 결국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습니다.
우리 법원은 법정에서 증거로 제출된 심리부검 결과를 일찌감치 인정한 바 있습니다. 서울고법 행정9부(재판장 박형남)는 2013년 12월 업무상 스트레스로 자살한 공무원의 유족이 “유족보상금을 지급하라”며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의 항소심에서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지 않은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판결했는데, 이게 첫 사례입니다.

대법원도 ‘심리부검 증거능력’ 인정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도 2020년 5월 극단적 선택을 한 해군 부사관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심리부검 결과의 증거능력을 배척한 원심을 깨고 원고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린 바 있습니다.
현직 법관들도 심리부검의 증거능력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한 대법원 재판연구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심리부검의 감정결과를 전제로 한 전후 사정들이 과연 팩트인지가 먼저 심리를 해야 합니다. 팩트가 맞다면 그 팩트와 사망 결과의 인과성을 인정하는 데 있어 사회통념이나 법관의 판단 기준으로 스스로 긍정할 만한 것인지 따져봐야죠. 그 결과에 따라 증거능력의 가치가 달라져요."
이 연구관은 "최근 4~5년 전부터 재판에서도 심리부검 활용도가 높아졌다"면서 "주로 형사재판에서 인정된 심리부검 결과가 민사재판에서 인용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민간사설 기관의 심리부검 결과 보다는 국과수와 같은 국가기관에서 분석한 부검결과의 증거능력이 더 높다고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심리부검 결과가 형사재판에서 유무죄의 독립적 판단 근거로, 민사재판에서는 불법행위 책임의 인정 근거로 채택될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닙니다. 물증이 먼저라는 얘기입니다.
앞의 재판연구관은 형사재판의 심리부검 결과가 민사재판에서도 인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전제하에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심리부검 결과가 단독으로 유무죄를 가르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다른 객관적 정황 증거들이 쌓여 있는 상태에서 이를 보완하기 위한 형태로만 고려됩니다."
자살예방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던 심리부검은 미국에서 도입된 지 60년이 지난 지금 법정에서도 주요 증거로 사용되는 단계까지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만큼은 발전 가능성이 밝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여러 논문에서 한계로 지적하는 바와 같이, 자살을 터부시하는 문화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아시아권에서는 중국이 심리부검 연구의 선진국이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요.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의 죽음은 대부분 본인의 선택, 즉 본인의 책임으로 치부됩니다. 산 자들이 그냥 그렇게 편의상 덮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며.
그러나 그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최근 우리는 생활고에 못이겨 스스로 극단적 선택에 내몰리는 이웃들의 안타까운 소식들을 자주 접합니다. 지난 추석 연휴에도 모녀가 안타까운 생명을 버린 일이 있었습니다. 이제 더는 두고 봐서는 안 됩니다.
자살예방이 본래 목적인 심리부검을 활성화 한다면, 복지사각지대와 사회안전망의 공백을 보다 현실적으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법적 영역에서의 심리부검이 가해자를 찾듯이 말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진부한 문화부터 척결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