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지났지만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를 보면서 서민들의 얼굴엔 희망보다 근심이 더 많아졌다. 안 오른 게 없고 올라도 너무 올라 시장 가기가 겁날 정도다. 이례적 물가 상승으로 서민들은 사는 게 너무 팍팍해졌다.
실제 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물가 인상은 심각한 수준이다. 올해 먹거리 물가가 크게 오른 가운데 추석 이후에도 당분간 가격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등에 따르면 주요 농산물의 경우 출하량이 줄어 이달에는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 가격이 비쌀 것으로 예상된다.
연구원은 청양계풋고추의 이달 도매가격은 10㎏ 기준 4만8천원으로 지난해 9월의 2만5천400원보다 89.0% 비쌀 것으로 전망했다. 오이맛고추는 10㎏에 4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의 3만6천300원과 비교해 10.2%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출하 면적 감소와 병충해 등으로 인해 생산량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매일 먹고 마시는 빵이나 우유, 과자 등도 원재료 부담 가중을 이유로 가격인상이 이미 예고된 상황이다. 농심은 15일부터 26개의 라면 브랜드 제품 가격을 평균 11.3% 올렸다. 주요 제품의 가격 인상폭은 출고가 기준 각각 신라면 10.9%, 너구리 9.9%, 짜파게티 13.8% 수준이다. 23개의 스낵 브랜드도 평균 5.7% 올랐다. 마트 기준 신라면은 봉지당 736원에서 820원으로, 새우깡은 1100원에서 1180원으로 인상됐다.
특히 2013년 이후 9년 동안 제품의 양은 늘리고 전 품목의 가격을 동결했던 오리온도 제품인상 대열에 합류했다. 전체 60개 생산제품 중 파이, 스낵, 비스킷 등 16개 제품의 가격을 평균 15.8% 인상했다. 주요 제품별 인상률은 초코파이 12.4%, 포카칩 12.3%, 꼬북칩 11.7%, 예감 25.0% 등이다.
팔도 또한 다음 달 1일부터 라면 12개 브랜드의 가격을 평균 9.8% 인상한다. 공급가 기준으로 팔도비빔면 9.8%, 왕뚜껑 11%, 틈새라면빨계떡 9.9% 등이 오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등의 영향으로 국제 곡물 가격이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원/달러 환율까지 폭등하면서 재료 수입단가가 올라 식품업계의 원가 부담은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다.
이에 사룟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 육가공업체의 부담도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더해 국내 원유(原乳) 가격이 오르면서 빵, 아이스크림 등의 가격도 줄줄이 오르는 '밀크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도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은 15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경기회복이 우선이냐 또 국민의 실질임금 하락을 가져오는 물가상승을 잡는 게 우선이냐는 논란이 있지만 일단 서민의 실질임금 하락을 가져오는 물가를 먼저 잡는 것이 우선이라고 하는 기조가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우리 정부도 이번 추석 성수품 주요 항목 20개 정도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대규모 물량 공급으로 가격 안정을 꾀했다. 이런 시장 친화적인 방법으로 물가 잡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10월부터 물가 상승률이 둔화할 것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추 부총리는 1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유가나 해외요인이 있지만 민생이나 장바구니 물가는 10월이 지나면서 조금은 걱정을 덜어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밝혔다. 10월경에는 소비자물가가 정점을 찍고 그 이후 소폭이나마 서서히 안정화 기조로 갈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7%로, 6월과 7월의 6%대에서 소폭 내려왔다. 물가 상승률이 둔화하는 추세지만, 농산물과 라면 등 가공식품 가격은 계속 상승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서민은 물가안정을 원하고 물가는 반드시 잡아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렇다할 정부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물가를 잡겠다면 신중하고 치밀한 근거를 제시해 기업이 수긍하고 국민이 혜택을 볼 수 있는 현명한 접근이 필요하다.
먼저, 물가를 안정시키려면 왜 물가가 올랐는지부터 정확하게 진단해야 한다. 최근에는 급격한 경기침체라는 벽에 부딪히면서 스태그플레이션(저성장 고물가 현상)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물가안정을 강조하는 정부의 다급함은 이해하지만 문제는 뾰족한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소득이 오르지 않는 경기불황기에 물가만 오르면 소비위축은 불을 보듯 뻔하다. 가격인상과 소비위축이 반복되는 악순환에 빠지지 않도록 정부는 물가 잡기에 모든 정책수단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언발에 오줌누기 식 대책으로는 되레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더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 뿐이다. 근본적인 물가 안정화 대책이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