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산과 DB하이텍이 물적분할 계획을 접었습니다. 주주들의 원성도 컸고, 무엇보다 무시무시한 국정감사에 경영진들이 소환될 위기에 처하면서 부담이 컸던 걸로 보입니다. 이들은 왜 그렇게 욕을 먹은 걸까요?
물적분할 후 상장, 즉 '쪼개기 상장'이란 말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물적분할은 '인적분할'과 좀 다른데요,
인적분할로 회사를 A와 B(신설회사)로 쪼개면 주주들도 A와 B 주식을 분할 비율만큼 가져갑니다. 50대 50으로 쪼개면 100주를 가진 주주가 A와 B 주식을 50주씩 갖게 되는 겁니다. 즉 B 회사가 새로 생겨도 B회사에 대한 지분도, A에 대한 지분도 고스란히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물적분할은 회사는 쪼개도 주식은 나누지 않습니다. LG화학은 LG에너지솔루션을 물적분할하면서 LG에너지솔루션 지분 100%를 보유합니다. 기존 주주들은? 한주도 받지 못합니다. 그저 LG화학 지분을 들고 있음으로서 간접 소유하게 됩니다. 물론 그상태로 유지가 되면 '간접 소유'가 의미있겠지만, LG에너지솔루션이 신규 상장한다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새로운 투자자들이 들어오면서 LG화학의 LG에너지솔루션에 대한 지분은 확 줄어들게 되고, 새로운 투자자들이 온전히 LG에너지솔루션의 성장에 따른 주가 상승을 누리게 되니까요.
기업들이 주주들의 원성에도 물적분할 후 신규상장을 굳이 선택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분율을 걱정하지 않으면서도 한몫 크게 땡길 수(?) 있으니까요.
LG화학이 인적분할했다면 지주회사인 LG는 LG화학에 대한 지분율(30.1%)만큼만 LG에너지솔루션의 지분율을 갖게 됐을 겁니다. 여기서 LG에너지솔루션이 자금을 추가로 조달하면 LG의 지분율이 낮아져 지배력을 유지하기 힘들어지지만, 물적분할을 하면 LG화학이 LG에너지솔루션 지분을 100% 갖고 있으니 다양~한 방식으로 투자금을 모을 수 있습니다.
물론, 회사가 정말 필요로 한다면 모회사 주주들의 권익을 충분히 보호해주면서 물적분할을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국감을 앞두고 DB하이텍과 풍산은 결국 물적분할을 포기했습니다. 금융당국이 진행 중인 주주 보호 방안까지 진행시키긴 힘들었을 수도 있고, 국회까지 소환돼 입에 오르내리는 게 부담스러웠을 수 있습니다.
DB하이텍의 경우엔 은 파운드리와 팹리스의 사업의 분리를 위해 분할을 추진했습니다. 파운드리란 고객사로부터 설계도면을 받아서 반도체를 위탁생산하는 '위탁제조' 담당이고, 팹리스는 직접 반도체를 설계하는 영역입니다. 팹리스 사업을 키우기 위해 분할을 통해 좀 더 전문성도 키우고, 자금을 더 조달해 성장하려는 목적이 있었겠죠. 또한 사업부문간 이해충돌 문제도 있습니다. 설계도면을 주는 고객 입장에서 이미 설계 사업을 하고 있는 회사에 자기 회사 설계도면을 넘기는 일은 민감 기술 유출을 우려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런 이해충돌을 완전 없애고 싶었겠죠.
하지만 삼성전자, SK하이닉스도 파운드리와 팹리스를 구분하지 않고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문성을 키우는데 꼭 물적분할이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주주들 입장에선 그냥 인적분할을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이죠.
풍산은 방산 부문을 떼는 물적분할을 하겠다고 했는데요, 방산은 풍산의 알짜 앙꼬 사업이 방산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주주 반발이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갸웃하는 시선도 많았습니다. 물적분할은 아직 적자지만 향후 성장 가능성이 큰 사업 부문을 떼내거나 부실 사업을 떼내는 용으로 많이 꺼내는 카드인데, 풍산에게 방산은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방산 쪽은 신규 R&D가 필요한 부분도 아니고, 현금 흐름이 워낙 좋아 굳이 문적분할해 돈을 더 조달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LG화학의 경우를 생각하면 신사업 배터리 분야로만 대규모 투자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물적분할을 단행했죠. 그렇다보니 그냥 최근 방산테마주 주가가 고공행진이다보니 이 틈을 타 크게 자금을 당겨보려는 것 아니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한편 한화솔루션은 물적분할 후 상장 계획까지 미리 밝히며, 반대하는 주주들로부터 주식을 공개 매수하고 있습니다. 주주들에게 기업의 돈으로 보상을 해주면서까지 물적분할은 필요한 일이라는 의지로도 볼 수 있겠네요. 이 같이 주식매수청구권(반대 주주들이 회사에게 주식을 사달라고 할 수 있는 권리) 도입,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시 규제 강화 등 금융당국은 기업들의 쪼개기상장을 어렵게 하는 제도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간 물적분할이 너무 쉬웠던 게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대주주는 아무 손실 없이 소액주주만 손실보게 하는 행위, 이런 쪼개기 상장 행태를 기업의 장기적 성과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포장할 순 없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