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시장이 난리통이다.
기준금리가 오르고 시중금리가 오르는데 채권시장이 긴장하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만, 지난 1~2주 동안은 올해 내내 글로벌 금리 상승의 여파로 오르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왜? 레고랜드 ABCP 보증을 거부한 강원도, 김진태 도지사의 결정 때문이다. 강원도는 춘천 레고랜드 건설에 참여했던 산하 공기업 강원중도개발공사(GJC)에 대해 법정관리를 신청하겠다고 발표했다. 증권사가 빌려준 2050억원을 대신 갚지 못하겠다는 배짱이었다.
이 결정은 금리 상승으로 바싹 말라가던 짚단에 불을 붙인 것과 같은 효과를 냈다. 지방자치단체도 자기네 사업을 위해 발행한 채권을 보증 못 하겠다는데 믿을 놈이 누가 있느냐, 신용등급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이제는 나라가 공인한 국채 말고는 답 없다, 이거다. 강원도 정확하게는 도정을 책임지는 지사의 얄팍한 이기심이 나라 전체의 금융시스템을 마비시키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늘(24일) 오전 채권시장 좀 보자. 평소에는 개인들이 거래할 수 있는 채권시장에 코빼기도 얼굴을 내비치지 않던 국민주택1종채권이 거래량 상위권에 등장했다. 집 살 때 샀다가 되파는 그 채권이다. 국민들의 주택조성을 위해 쓸 목적으로 발행하는 채권으로 당연히 국가가 신용을 보장하는 채권이다.
국민주택1종채권22-10 채권은 5년물로 발행일이 이달 31일로 찍혀 있지만 현재 시장에서 거래가 가능하다. 호가는 8200원대 중반. 4.9% 안팎의 수익률이 기대되는 가격이다. 이건 이제 막 나와서 거래가 많다 치고, 2017년, 201년에 발행되어 평소 거래도 없던 채권들이 가격이 뚝 떨어진 채로 가격이 매겨지고 있다.
그래도 국민주택채권은 국가가 보증하는 채권이라 사정이 나은 편이다. 지자체가 보증하는 지역개발채권들은 추풍낙엽 신세다.
유동화 전문회사인 특수목적회사(SPC)가 매출채권이나 부동산 등 자산을 담보로 발행하는 ABCP발 위기이다 보니 이와 직접 엮여 있는 건설사들도 유탄을 맞았다. 일부 건설사들의 부도설 찌라시가 돌았고 주가가 폭락했다.
결국 정부가 나서기로 했다. 채권시장 안정펀드 20조원, 정책금융기관의 회사채 및 기업어음 매입에 16조원, 증권사를 지원하는 데 3조원 등 총 50조원을 투입하기로 한 것. 하지만 불이 붙은 이상 쉽게 꺼지긴 어려울 것이다.
지자체 보증 채권도 이런데 기업들은 오죽할까? 대기업들이 발행하는 채권 금리도 치솟고 있으며 이미 발행한 채권가격은 계속 흘러내리고 있다.
대기업들이 저러면 중소기업은... 갈 곳이 없다. 은행은 대출을 꺼리고 채권시장에선 아무리 금리를 높게 불러도 외면하게 된다. 당장 나부터도 돈 떼일까 걱정돼 지갑을 여는 데 주저할 수밖에 없다.
새로 발행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곧 만기가 돌아올 채권이 있는 기업들의 걱정은 태산 같다. 채권을 갚을 만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으면 모를까 대다수는 다시 채권을 발행해 갈아타곤 하는데, 이게 쉽지 않게 됐다. 현재 주가 하락이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존폐가 위협받는 상장기업이 나올 수 있다.
채권시장은 원금과 이자 상환에 대한 신뢰에 기반해 돌아간다. 이걸 한 사람이 망가뜨려 놓은 꼴이 됐다.
나라 전체가 경제 위기에 몰린 상황이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부처 각 기관과 금융회사, 기업들이 머리를 맞대고 위기를 슬기롭게 넘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다시는 ‘그’와 같은 빌런이 나오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