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고 돌아와서 잡설 하나 쓰려합니다.
요즘 지극히 경망스러운 정치권의 말들 넘쳐나고 있습니다.
급기야 일부 정치인들의 언어들은 거의 ‘봉숭아 학당’ 급이 되었지요.
여야를 막론하고 그 수준의 저열함을 겨루기라도 하는 양, 연일 기막힌 이야기들이
‘국회의원’이라는 입으로 뱉어지고 있습니다.
일개 유튜버들에게 정치인들이 끌려다니는 것들이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긴 하지만, 제1야당의 최고위원이 공개 연단에서
일개 유튜버에게 성을 뺀 이름만으로 불리기도 하고, 검증 되지 않은 찌라시 수준의 이야기를 국감장에서 질의했다가
개망신을 당하고 있으니. 참 마뜩치 않습니다.
압색을 당하는 민주당사 앞에서는
연일 찬송가와 ‘지랄하고 자빠졌네’라는 확성기의 노래가 겹쳐져 상황을 희화화 하고 있습니다.
집회 참여자들은 비장할 것이나 상황은 코미디인 이런 상황을 뭐라고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스스로 어휘력 부족이 난감한 지경입니다.
요즘, 개인 유튜버들이 재미보고 규모가 회사급으로 커지다 보니,
앞에는 ‘언론’의 간판을 달고
술 좌석에서나 할 수준의 말들을 여과없이 다 퍼붓고 있습니다.
동일 업종의 동일메뉴를 취급하다 보니
업계 내 동업 상대방에 대한 견제와 비방과 폭로가 ‘후원’이라는 이름의 그 시장에서의 싸움이
정치권 공방 못지 않게 치열합니다.
그 개싸움에 국회의원들도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어느 의원은 어디 쪽에 가깝고 어느 의원은 어느 쪽 인터넷 방송을
협업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말이 공공연한 가운데 이제는 기사로도 접하게 되는 지경입니다.
제1야당의 비공개 회의 때의 발언조차 실시간으로 제공 되고 있고
이는 즉시 풍성한 각색으로 누군가를 비난하고 매도하는 제목과 내용으로 재가공 되는데
이를 여과없이 수용하는 실시간 이용객들은 안타깝게도 넘쳐납니다.
정치인과 ‘후원사업자’들이 공생의 관계임을 숨기지 않는 이런 카르텔에서 서로 얻는 것은 자명합니다.
정제되지 않은 정보를 주고 받으면서 한 쪽은 구독자수와 후원증가를 얻고, 한 쪽에서는 지지세력을 제공 받고 있지요.
저는 그 소비자를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정의’이거나 '참여'라는 이름으로 이뤄지는 그 열기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동력이기도 하겠다는 생각도 더러 있습니다.
다만 그러한 소비시장을 두고 업계 1위를 위한 ‘업자’들의 이전투구와 선정적 경쟁은
이제 역사까지 뒤 틀어 놓고 있는게 번연히 눈에 보여 암담해 지곤 합니다.
후원계좌부터 박고 시작하는 이 업계 사람들의 탐욕은
이제 새로운 영역으로의 진출을 꿈꾸기도 합니다.
지지자용 굿즈 판매와 시위용품을 팔기고 하고, 여론조사 업에도 진출하고 있기도 하고
포털사업도 꿈꾸고 있으니 참 야무지기도 합니다.
돌아보면 이들의 원조는 PC통신 시절 1인 신문부터 시작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김*필의 백수신문이거나 이*흠의 길품신문 같은 것이 예전에 있었습니다.
통신인.누리꾼.네티즌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은 서초동 앞의 집회거나 대학로등의 집회를 열고
‘언론자유’와 ‘통신자유’를 위해 활동하였지요. 물론 정치적 입장도 내곤 하였습니다.
그들의 순수한 열정을 아직 기억합니다.
어젯밤 그들 사이에서는 또 큰 잇슈가 터졌습니다.
아무리 좋은 눈으로 봐줘야 어떤 청춘남녀의 애정싸움 끝에 나온
변명성 전화 ‘녹취록’이라는 것을 가지고 크게 마켓팅을 한 것이지요.
이를 근거로 국정감사에서 발언을 하고 망신을 사서 하는 정치인과
이러한 허무맹랑한 주장을 탄핵 사유라고 우겨대는 일부 넋 나간 정치인들의 꼴을 보면서
합리와 상식이 무너져 내린 이 야만의 시대에 ‘동백아가씨’라는 대통령의 강제 애창곡은 그렇게 탄생 하였습니다.
하필 왜 ‘동백아가씨’일까요.
설마 ‘왜색’이라는 구시대의 검열 잣대로 또 다시 친일 프레임이라도 만들 큰 그림일까요?
다 좋습니다.
그러나 상대는 다 건다는데 아무것도 걸지 못하는 비겁함과 옹색함으로야 어디 저들을 이길 수 있을까요?
아무리 급해도 바늘에 실, 허리에 묶어 쓰지는 못하는 법 아닐까요?
잡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