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진 라메르 데시앙 아파트는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아야진리, 아야진 해수욕장과 아야진항을 내려다보는 언덕에 지어질 아파트다. 속초시도 아닌 곳에 811세대 고성군 최대 규모로, 지역 건설사도 아닌 전국구 브랜드가 들어온다는 소식에 지역주민들은 오래 전부터 이 분양이 진행되기를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주민이 아니라도 강원도 태백산맥 너머 영동에서, 강릉도 속초도 아닌 고성군에서, 대단지 공급이 성공할까 지켜본 업계 관계자들과 투자자들이 많았다.
기자가 이곳에 관심을 두고 지난 1년여간 지켜본 것은 아야진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강원도 동해 해안가 마을 중에서 양양이 서핑족 덕분에 먼저 떴다면, 고성은 이제 막 뜨기 시작한 곳이다. 속초까지 이어진 동해고속도로 덕분에 고성군의 접근성이 대폭 개선된 결과일 것이다.
고성군에서도 아야진은 작은 항구와 해변 주변으로 아기자기한 부띠끄 호텔과 카페가 들어서면서 빠르게 변하고 있는 곳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몇 번을 방문했는데 갈 때마다 풍경이 변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마치 오래 전 제주 해안마을을 보는 것 같아 계속 지켜보던 동네다.
이곳에 811세대 아파트가 들어온다는데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아야진만의 발전 가능성 외에도 이곳엔 아파트가 유진클래시움 두 동밖에 없다는 것, 고성군의 중심인 간성의 아파트가 노후화했다는 것, 또 속초 시 경계와 멀지 않아 시세가 급등한 속초에서 밀려난 주민들이 대안으로 삼기에 괜찮은 위치인 점 등 가능성은 충분해 보였다. 초등학교도 가깝다.
물론 뜨는 동네에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짓는 아파트라서 다른 지역 수요자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주변에 편의시설이 부족하다는 게 단점인데 인근 봉포에 하나로마트 등이 있어 차량으로 이용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대단지가 들어서면 새로운 점포들도 따라서 생길 것이다. 아마도 공사가 시작되면 내년 휴가철엔 이곳의 중개업소에 들릴 휴가객들이 제법 있을 것이다.
(출처=태영건설 아야진라메르데시앙 분양 홈페이지)
아야진 라메르 데시앙은 전국 부동산 시장이 어수선한 와중에 이달 초 분양을 진행했음에도 예상대로 평균 경쟁률 3.7대 1, 최고 경쟁률 27대 1로 흥행에 성공했다. 대부분 평형에서 1순위 마감했다.
물론 이게 전부 계약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다. 떠오르는 관광지 바닷가 아파트라는 특성상 실거주 의사 없이 프리미엄 목적으로 청약한 주민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들에겐 고층 오션뷰 동호수에 당첨되기만 하면 고율의 양도세를 내고도 짭짤한 차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였을 것이다. 경쟁률이 높았던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하지만 향이 반대쪽이거나 저층 당첨자들은 계약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 인기와는 별개로 미분양이 발생할 확률이 높은 셈이다. 이럴 땐 고성군 최대 규모라는 게 부담이 될 것이다.
이 아파트는 태영건설이 시공한다. 하지만 이 사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가는 땅주인(또는 땅주인 역할을 하는) 시행사는 이름도 낯선 주식회사 지앤디다. 지앤디를 붙여 쓰는 건설, 개발회사들이 많은데 정작 (주)지앤디는 전자공시 같은 데 나올 수 있는 사이즈가 아니다. 아파트 시행사들은 대개 그렇다.
이 작은 회사가 수천억짜리 사업을 어떻게 끌고 갈까? 이번 분양은 국평(전용면적 84㎡) 기준 분양가를 3억원대로 맞추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웬만한 것은 전부 옵션으로 돌렸다. 즉 아무것도 없는 ‘깡통’이 3억원 중후반대다. 20평대도 있고 40평대도 있고 펜트하우스도 있어서 이들의 분양가를 전부 돈으로 환산하면 총 3000억원 정도 규모가 되는 사업이다.
태영건설이라면 모를까 이만한 돈을 작은 시행사가 갖고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사업을 벌일 수 있는 것은 돈을 구할 방법이 있어서다.
당연히 시행사는 은행이나 보험사. 증권사 등에서 돈을 융통한다. 그러면 은행은 뭘 믿고 지앤디 같은 작은 회사에 돈을 빌려주느냐? 일단 사업지 즉 땅을 담보로 잡는다.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사고 등에 대비하기 위해 사업기간 동안 땅의 명의를 신탁사에 맡기도록 조치한다. 이번 아야진 라메르 데시앙 사업은 무궁화신탁이 맡았다.
문제가 생기면 금융회사는 땅을 팔아 제일 먼저 자기네 돈을 챙길 것이다. 1순위 우선수익권을 갖기 때문이다.
또한 시행사가 돈을 못 갚으면 건설사가 떠안기로 하는 확약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건설사는 2순위 수익권을 갖기는 하는데 정말로 금융회사가 땅을 처분하는 상황이 오면 2순위까지 돌아오는 몫은 거의 없다. 위험 부담을 지는 것이다.
뭔가 건설사 입장에선 모든 책임만 떠안고 안전장치는 없는 것 같은데 이런 구조여도 사업이 폭삭 망하거나 시행사가 사고를 안 친다면 별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다. 돈 빌려준 은행 등 금융회사는 자신들이 소유한 권리를 그대로 놔두지 않는다. 시행사에게 빌려준 돈을 받을 권리를 금융상품으로 만들어 시장에 유통시켜 추가 이익을 챙긴다.
시행사가 최종적으로 돈을 갚으려면 분양을 해서 당첨자들에게 계약금과 중도금, 잔금까지 다 받아야 하는데 그때까지는 2년 반에서 3년이란 시간이 필요하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돈을 묶어두는 대신 시간을 줄이는 방법을 고안했다.
이렇게 미래에 아파트 계약자들이 낼 예정인 분양대금을 담보로 만들어낸 금융상품이 바로 대출채권 유동화증권인 ABCP다.
부동산 시장이 훈훈할 땐 ABCP를 발행 유통시키는 데 문제가 없었지만 이젠 사정이 다르다. 강원도가 지급보증했던 춘천 레고랜드 ABCP도 보증을 하느니 마느니 하는 상황이 되면서 전체 ABCP와 PF대출의 리스크가 부각됐다.
더욱이 부동산 시장이 빠르게 식으면서 미분양 아파트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우려 요인이다. 분양대금이 들어와야 빚을 낸, 이를 보증한, 이를 기초로 발행한 ABCP가 모두 안전할 텐데, 미분양이 대거 발생하면 유입될 것으로 예상했던 돈이 크게 줄어 ABCP 상환이 제대로 될 수 없을 거란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동시에 이를 유동화시킨 금융회사와 보증 선 건설사에게 책임이 넘어올 수 있다. 이로 인해 멀쩡하게 사업 잘하고 있던 건설사들이 타격 받을 수 있다는 공포가 커졌다.
아야진라메르데시앙 조감도 (자료=태영건설 아야진라메르데시앙 분양 홈페이지)
태영건설은 매년 수천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알짜 중견 건설사다. 부채비율 높다는 것 빼면 버는 이익에 비해 주가도 낮아 특히 가치투자자들이 애정하는 기업이다.
하지만 태영건설도 이 PF대출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태영건설의 PF 우발채무(연대보증·자금보충·채무인수 합산)가 2조3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3분기말 태영건설 자본총계(7224억원)의 3배에 달한다. 이 때문에 최악의 경우 흑자부도가 날 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스물스물 피어나고 있다.
이 막연한 공포감은 아야진 데시앙 아파트 당첨자들에게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당첨돼서 좋긴 한데 “태영건설 부도나면 어쩌죠?” 이런 말들이 오간다. 그 영향으로 오션뷰 아파트의 초피(초기 프리미엄)도 그리 높지 않게 형성된 상황이다.
가장 좋은 오션뷰를 확보한 40평대가 자리잡은 동의 중간층 프리미엄이 1000만원 수준이라고 한다. 속초 시내도 거품이 꺼지고 있어 저렴하다고 할 순 없겠지만 ‘아야진’의 ‘오션뷰’ 대형 아파트가 프리미엄을 포함해 5억원대라면...
PF대출에 대한 공포감은 이렇게 지방 아파트들부터 현실화되고 있다. 투자자는 일단 피하고 외면하면 될 일인데, 오랫동안 이 분양을 기다렸다가 청약했던 주민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당장의 관건은 계약률이다. 외부로 공표되진 않겠지만 분위기는 흘러흘러 전해질 것이다. 주민들의 불안을 씻어낼 만한 소식이 나오길 기대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