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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센 희곡 전집 완역한 김미혜 교수 번역…"현대 가정에서도 일어나는 일 다뤄" (서울=연합뉴스) 최주성 기자 = "당장 가서 내 새끼 잡아 와!" 8년간 이어진 수감생활과 8년간 집 옥탑에서 칩거하는 시간을 보냈던 남자 욘이 긴 침묵을 깨고 나타나 하인에게 불호령을 내린다. 욘은 수감과 칩거 생활을 겪으며 젊은 시절 누렸던 부와 명예를 모두 잃어버린 상태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는 여전히 근엄한 아버지이자 권력을 손에 쥔 남자의 면모를 뽐내고 싶다는 욕망이 남아있다. 그런 욘의 마음과 달리 가족들은 욘에게 눈길 한 번 건네지 않는다. 욘이 허세를 부리면 부릴수록 가족들의 태도는 점차 신경질적으로 변해갈 뿐이다. 2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개막한 서울시극단 연극 '욘'(John)은 헛된 권위에 사로잡힌 남자 욘이 점차 자신의 초라한 속내를 드러내는 과정을 따라간다. '욘'은 노르웨이 태생으로 근대극의 선구자로 불리는 극작가 헨리크 입센이 만년에 남긴 작품이다. 병든 늑대 같은 남자 욘과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충돌을 중심으로 인간의 욕망과 고독을 묘사하고 있다. 작품은 "세상 사람 모두가 자신의 부활을 보게 될 것"이라는 헛된 꿈을 품은 욘의 추락에 중점을 둔다. 여기에 공허한 삶을 바꾸기 위해 아들 엘하르트에게 집착하는 욘의 부인 귀닐, 욘을 향한 감정을 내려놓지 못하는 여자 엘라의 이야기가 더해지며 채워지지 않는 고독의 감정을 담아낸다. 엘하르트가 집을 떠나간 뒤 욘과 귀닐, 엘라가 서로 등을 돌린 채 우두커니 서 있는 장면에서 고독의 감정이 두드러진다. 집이 떠나갈 듯 소리를 지르던 욘과 그에게 지지 않으려 목에 핏대를 세우던 귀닐의 침묵은 마음속 상처와 상실감을 짐작하게 했다. 유일한 희망이었던 아들을 떠나보낸 욘이 눈 덮인 산을 오르는 장면은 소리와 조명으로 인상을 남겼다. 눈을 형상화한 구겨진 종이가 사그락거리는 소리를 연출하는 가운데, 눈에서 반사된 빛을 받아 하얗고 초라하게 드러난 욘의 얼굴은 연민을 끌어냈다. 입센 희곡 전집을 번역한 공로로 노르웨이 왕실 공로 훈장을 받은 김미혜 한양대 명예교수는 번역가이자 드라마투르기(문학·예술적 조언하는 연극 전문가)로 참여해 원작의 핵심을 살리며 현대 관객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갔다. 김 교수는 이날 언론 대상 시연회에서 "'욘'은 150년 전 작품이지만,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가정에서도 일어나는 일을 다루고 있다"며 "4막에 인생을 나타내는 수많은 은유가 등장해 매번 눈물이 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욘이라는 인물에 관해서는 "입센은 주인공이 강한 인상을 남긴 캐릭터일 때 주인공 이름을 희곡의 제목으로 정했다"며 "욘은 입센이 쓴 작품 중에서도 강력한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고선웅 연출은 입센의 작품을 처음으로 맡아 부담이 큰 상황에서 김 교수의 조언이 도움이 됐다고 돌아봤다. 고 연출은 "입센 작품을 연출하는 과정에서 겁이 많이 났는데 김 교수님께서 많은 부분을 열어주셨다"며 "교수님의 말씀에 용기를 얻어 많은 부분을 쳐내면서 작업할 수 있었다. 원작을 다시 읽어도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없을 정도로 각색했다"고 밝혔다. 연극 '욘'은 4월 21일까지 계속된다. cj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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