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결심을 했습니다. 본격적인 여름을 앞두고 음식물 처리기를 구입했습니다. 70만원 정도였어요. 더운 여름날씨 기분 나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일은 소름끼치게 싫어요.
미생물 방식의 음식물 처리기를 택했습니다. ('내돈내산' 임을 밝힙니다) 투입 가능한 음식물이 다소 까다롭긴 하지만 미생물에 의해 분해된 쓰레기를 일반 쓰레기로 분류해, 버리면 되는 매우 친환경적인데다 유지비용이 크게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생물(흙에 섞인)이 떨어지면, 5만원 정도로 별도로 사서 다시 넣어주는 식으로 사용하면 된다고 합니다.
음식물 처리기에 '밥 한덩이'를 넣어주었습니다.
매뉴얼과 블로그, 유튜브를 보며 꽤 긴 시간 공부를 통해서 디바이스 작동을 시작했습니다. 초반 미생물을 안정화시키는게 중요하다고 해요. 음식물을 처리하는 미생물과 흙이 섞인 비료 포대 같은것을. 디바이스(기계)에 넣고, 전원 버튼을 누르면, 기계가 작동합니다. 디바이스 안의 교반봉이 음식물과 흙(미생물)을 섞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다만 초반에 미생물을 키우는 과정은 매우 신경을 썼습니다. 이 미생물은 탄수화물을 좋아한다고 해요. 매뉴얼에 나온대로, 처음에는 밥 한덩이를 넣어주었어요. 6시간쯤 지났을까요. 디바이스를 열어 삽으로 뒤적뒤적해봤더니 밥은 어느새 자취를 감췄습니다. 미생물을 키우는 초반에는 주로 밥이나 빵 같은 탄수화물을 넣어주어 미생물을 쑥쑥 키웠습니다. 물론 미생물은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요. 탄수화물을 넣는 즉시, 분해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3~4일이 지났을 무렵, 미생물이 잘 정착한 것 같아서 일반 음식물 쓰레기 처리에 도전해보았습니다. 먼저 설겆이 후 일반 음식물 쓰레기를 받아서 물기가 빠지게 두었습니다. 주로 잔반과 밥알 등이었습니다. 미생물은 양념이 베어있는 반찬, 음식물의 분해를 힘들어한다고 해서 양념이 모두 씻겨 나가도록 잘 씻어두었습니다.
밤 10시쯤 음식물 쓰레기를 넣고 다음날 아침에 열어보았습니다. 삽으로 뒤적뒤적 해봤지만 역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거의 분해가 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마른 과자 처럼 덩어리진 것들을 볼수 있었는데요. 이런 것은 삽으로 골라내주었습니다. 다만 물기가 있고, 섬유질이 많은 과일껍질이나 채소 등은 잘게 썰어넣어야 합니다.
달걀껍질, 양파껍질, 과일씨앗, 생선뼈, 파뿌리 같은 음식물 쓰레기를 넣으면 안됩니다. 사실 이전에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썼을때는 씽크대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는 모두 넣었거든요. 귀찮아서요. 하지만 미생물 방식의 음식물 처리기는 순수한 의미의 음식물 쓰레기만 분해할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사실 습관이 되지 않아 조금 귀찮기는 하지만요. 밖으로 버리러 나가는것에 비하면 이정도 불편쯤이야 감수할 수 있습니다. 달걀껍질이나 생선뼈 등 주방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담을 수 있는 냄새가 나지않는 일반 쓰레기통이 필요해보여 '기저귀 쓰레기통'이라 불리는 냄새 차단이 탁월하다는 일반 쓰레기통도 하나 구입했답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이런식으로 처리가 가능하다니…충격이었습니다. 정부가 유해물질을 줄이기 위해 친환경 보일러 보급에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거든요. 예를 들어 보일러가 40~50만원대라면, 관련 지자체에서 10만원 정도씩 지원하는 식으로요. 음식물 처리기에도 이런방식을 적용한다면 가정내 음식물 쓰레기도 줄일 수 있고, 음식물 처리를 위한 비용 절감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수많은 가정주부들이 음식물 쓰레기를 들고 동네를 오가는 일도 줄어들 겁니다. 큰 노력 없이도 친환경적으로 음식물을 처리할 수 있음에도 관련 업자들의 이해관계로 인해 국내 음식물 처리기 시장 확장이 어렵다고 합니다. 누가 보아도 합리적이고 친환경적인 '지름길'이 보이는데도 이를 선택하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깝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