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빠서 이어가지 못했던 정치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이어가본다. 마케아벨리, 홉스와 로크, 몽테스키외에 이어 오늘은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aeu, 1712-1778)다. 철학자들의 사상은 개별적이지 않다. 역사적으로 이어져있다. 오늘날 세계 정치와 한국 정치를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치 철학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민생’ 타령하면서 투표권 많이 가진 집단의 이익에 복무하는 얄팍한 포퓰리즘이 판치는 현 세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정치 철학과 사상을 다시 이야기하는 시대가 와야 한다고 믿는다.
‘민주주의’의 탈을 쓰고, ‘민생’이라는 장식품을 앞세워 숫자 많은 집단이 이익을 챙겨가는 사이 소수자들은 늘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투표권 숫자 크기가 작은 성소수자, 장애인 등 다양한 소수 집단은 늘 뒷전으로 밀리는 세상이다. ‘공동체의 이익’, 공익이라는 가치는 사라지고 있다. ‘다수결 민주주의’를 이용해 각종 다양한 이익집단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정치가 발호하고 있다. 장애인 학교 하나 제대로 세우지 못하는 공동체, 우리가 사용한 쓰레기 처리장 하나 제대로 만들 수 없는 세상이다. 별 어려움도 없으면서 ‘전국민 재난지원금’이라는 이름으로 공적 자금을 ‘공평하게’ 나눠가지는 염치 없는 세상이 되었다.
고대 아테네보다 못한 2022년 대한민국 민주주의
기원전 490년 아테네는 페르시아와 마라톤 전투를 치렀다. 7년 후인 483년 아테네 남동부 라우레이온(Laureion)에서 대규모 은광이 발견됐다. 은광 수익을 놓고 의견이 갈렸다. 기존 관례대로 시민들에게 골고루 분배하자고 제안하는 측과 함선을 건조하자는 테미스토클레스(Themistocles)가 팽팽히 맞섰다. 결국 테미스토클레스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은광 수익으로 200여 척의 함선을 건조했다.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1세가 아테네를 침공했고, 테미스토클레스가 이끄는 함대는 살라미스해협에서 대승을 거뒀다. 크세르크세스는 패배에 전의를 상실하고 페르시아로 돌아갔다. 전쟁에서 승리한 아테네는 강력한 해상국가로 발돋움하며 그리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대를 누렸다. 은광에서 나온 수익금을 공평하게 나누어서 써버렸다면 함대는 건조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함대가 없었다면 아테네를 비롯한 그리스연합군은 페르시아군을 결코 막아낼 수 없었다. 살라미스 해전 이전까지 그리스연합군은 연전연패하고 있었다. 이순신의 한산대첩이나 명량대첩이 연전연패하던 조선을 살려냈듯이 말이다.
자원을 어떻게 공적으로 사용하는지를 잘 보여준 사례였다. 근대국가가 성립한 이후 국가 권력의 가장 큰 역할 중 하나가 바로 자원 배분이다. 그동안 많은 선진 국가는 많은 부를 가진 사람들에게서 세금을 거둬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자원을 배분했다. 복지제도의 기본 근간이다. 그런데 2020년 코로나 국면을 핑계로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라는 게 지급된 이후 너도 나도 내 손에 돈 한 푼 더 쥐어 주는 정치를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국가의 도움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사람들조차 자기 주머니 채워주는 정치를 선호하기에 이르렀다.
정치의 타락이다. 공동체의 파괴다. 이런 얄팍한 정치를 중단시키지 못하면 갖고 있는 투표권 숫자가 작은 소수자와 소외된 사람들은 더욱 더 배제될 수밖에 없다. ‘민생 타령’하는 정치를 앞세워 ‘염치 없는 중산층’이 여기저기 두더쥐처럼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이 가진 표를 두려워하는 정치인들은 민주주의를 앞세워 이들의 이익을 수호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좌파와 우파 모두 다르지 않다.
2020년 이후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이후에 노골적으로 등장한 이런 현상은 철학 없는 정치의 산물이다. 부자와 빈자 사이에 있는 중산층이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행태를 보이면 공동체는 파괴된다. 민주주의는 타락하고 껍데기 민주주의만 남게 된다. 그래서 지금 이 시대는 민주주의의 종말을 가져올지도 모르는 ‘민주주의의 위기 시대’다.(오늘날 님비 현상이 어느 계층에서 비롯되는지를 보라. 거의 다 중산층이다.)
이런 포퓰리즘 정치의 득세는 루소의 정치철학을 불러내고 있다. 중산층들이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행태를 보이면서 이 사회에서 소외된 좌우파 공히 지금의 중산층 중심의 체제를 뒤엎어버리고 싶은 욕구가 극대화될 수밖에 없다. 이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은 좌,우 가리지 않고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미 우파의 소외된 자들이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밀어올리기도 했고, 좌파의 소외된 자들은 버니 샌더스에 환호했다. 한국에서는 이재명이 버니 샌더스처럼 좌파 포퓰리즘으로 민주당을 집어 삼켰고, 국민의힘 또한 우파의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가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지나간 글 읽기>
(정치철학사)① 마키아벨리는 왜 군주론을 썼을까?
(정치철학사)② 근대로 가는 징검다리 만든 홉스와 로크
(정치철학사)③ 몽테스키외가 이재명을 보았다면...
(정치철학사)④ 프랑스혁명과 촛불혁명은 누가 말아먹었을까?
지난 4편에서 나는 루소의 정치철학이 프랑스혁명을 실패로 이끌고, 이후 스탈린이 이끄는 역사상 가장 잔인한 전체주의 체제인 소비에트연방을 불러냈으며, 중국과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활용되고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오늘 글에서는 잔인한 정치에 활용된 루소를 변호하고자 한다. 프랑스혁명의 실패는 루소 때문이 아니고, 전체주의 국가의 발호도 루소 때문이 아니다. 혁명을 앞세워 파괴를 일삼은 자들이 루소를 활용했을 뿐이다. 마치 파쇼화된 이재명의 민주당이 민주주의자 김대중과 노무현을 활용하듯이 말이다.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를 계승한 루소
장 자크 루소는 마키아벨리가 사망한 1527년으로부터 180년 뒤인 1712년에 태어났다. 마키야벨리가 고대 로마공화정을 되살려냈지만 당대에는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런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를 되살려낸 사람이 바로 루소다.
오늘날 공화주의는 좌파와 우파에 의해 자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우파는 민주주의 과잉을 비판하고 대의제를 강조하기 위해 루소를 들먹이고, 좌파는 공공성을 강조하고 예속에서 벗어난 자유를 강조하기 위해 루소의 공화주의를 인용한다. 그럼에도 좌우파 모두 부정하지 않는 공통점은 ‘법의 지배(rule of law)’다. 법치주의는 근대국가의 핵심 원리이자 공화주의의 근간이다.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법의 지배에 대해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나는 법으로 다스려지는 국가들, 그 행정 형식은 어떻든 간에 모두 공화국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그 경우에만 공적인 이익이 지배하고 공적인 일이 경시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합법적인 정부는 곧 공화적이다…(중략)…법은 본디 사회적 결합의 여러 조건들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따라서 국민은 법을 따르는 동시에 법의 제정자여야 한다." - p198
‘법의 지배’와 동시에 ‘국민이 법의 제정자’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게 바로 역사적으로 수많은 독재자들과 전체주의 국가, 현존했던 사회주의 국가들이 악용한 ‘일반의지’라는 개념이고, ‘인민주권론’이다.
공화주의는 흔히 ‘왕이 없는 나라’로 이야기 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통치했던 영국을 공화국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런 측면에서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와 루소의 공화주의는 중세와 근대 만큼 차이가 있다.(마키아벨리 전공자들은 나의 이런 서술에 반대하겠지만 말이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쓴 뒤에 피렌체로 돌아온 메디치 가문에 이 책을 바친 점에서 마키아벨리가 적어도 군주제를 타파하는 의미에서 공화주의를 주창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당시 이탈리아의 여러 공화국에는 왕도 없었고, 군주도 없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강력한 군주의 필요성을 설파했다.(마키아벨리 전공자들은 이 점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다.)
그럼에도 마키아벨리가 고대 로마 공화정에서 공화주의를 살려낸 덕분에 루소의 근대적 의미의 공화주의가 탄생할 수 있었고,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이 나올 수 있었다. 그만큼 마키아벨리가 근대국가 형성에 끼친 영향력은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공화주의의 한쪽 날개가 ‘법의 지배’라고 한다면, 다른 날개는 ‘시민적 덕성(비르투, virtu)’이라고 할 수 있다. 비르투는 쉽게 표현하자면, 타인에게 가해지는 억압이나 폭력, 그리고 각종 불의와 차별에 분노하는 감정을 가진 시민 윤리라고 할 수 있다.(스코틀랜드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이를 ‘공감’으로 표현했다. 흄은 루소가 프랑스에서 박해를 받고 영국으로 왔을 때 루소에게 각종 편의를 제공하며 우정을 나누었던 철학자다. 루소는 그런 흄과도 절연할 정도로 피해의식이 강했다. 영국인들이 자신을 해치려한다는 음모론에 휩싸여 결국 영국을 떠나게 되기도 한다.)
‘법의 지배’와 ‘비르투’를 통해 실현하려는 것은 바로 ‘공공선’이다. 정말 이론만 보면 나무랄 데가 없다. 문제는 여기에 ‘일반의지’라는 개념, 그리고 여기서 파생된 ‘인민주권론’이 수많은 전체주의 국가를 탄생시켰다는 점이다. 루소가 원한 결과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존재했던, 그리고 현존하는 거의 모든 독재자들, 전체주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하나같이 루소의 정치 철학을 이용해 자신들의 체제를 정당화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2022년 현재 더불어민주당을 장악한 이재명과 그 지지자들의 언행을 보면, 이들 역시 루소의 정치 철학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루소가 원하지 않았던 루소의 시대
루소가 프랑스혁명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다. 루소는 혁명이 일어나기 10년 전인 1778년에 죽었다. 그러나 루소가 남긴 저작물은 혁명 세대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프랑스 혁명 전후로 루소의 저작물은 가장 인기있는 책이었다. 곳곳에서 루소 책을 읽고 토론회가 벌어졌다.
루소의 핵심 사상은 앞서 말한 ‘인민이 입법자’라는 논리다. 우리는 이걸 ‘자기 통치의 원리’라고 말한다. 헌법과 법률이 정당성을 가지는 것은 우리가 투표로 승인했기 때문이고, 우리가 대리자로 내세운 국회의원들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루소는 오늘날 국회에 해당하는 ‘민회’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인민이라는 존재는 눈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정기적으로 열리는 민회가 존재하면 인민도 항상 존재한다는 논리였다.
정치 영역에서 인민의 존재를 확인하는 게 ‘민회’라고 한다면, 정치 바깥에서는 ‘써클(Circle)’이 존재한다. 써클은 80년대 대학생들에게는 익숙하지만, 이후 순우리말을 쓰자는 운동이 일어나면서 ‘동아리’로 대체됐다. 써클은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모임이었다. 국민들의 대리인으로 구성된 민회가 대의민주주의를 상징한다면, 써클은 직접민주주의에 가깝다. 다만 루소는 민회를 선출하는 사람들을 ‘인민’으로, 그 외의 정치적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시민’으로 구분했다.(국민주권, 인민주권, 시민주권은 모두 다른 개념이다. 2018년 3월 문재인 정부가 제출한 개헌안은 기존의 ‘국민주권’ 대신 ‘시민주권’을 채택했다.)
오늘날 좌우파 공히 루소의 ‘인민주권’과 ‘직접민주주의’를 결부시키고 있지만 이는 자의적 해석일 뿐이다. 루소는 민회를 중요시하는 대의민주주의자였다. ‘시민’보다는 ‘인민’을 중시했다. 좌파는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우파는 비난을 위해 루소를 각각 자의적으로 이용했다.
대표적으로 4편에서 썼듯이, 프랑스혁명 주도 세력 중 강경파인 자코뱅당은 루소를 '프랑스 혁명의 아버지'로 기리며 국립묘지 팡테옹에 안치했는데, 그 위치가 살아 생전 사상적으로 앙숙이었던 볼테르 맞은 편이었다. 사실 루소는 “혁명을 극도로 혐오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자코뱅당의 로베스피에르, 생쥐스트의 정신적 지주였다.(이 글에 인용된 문장은 아래 이미지에 나오는 책에 있는 내용들이다.)
볼테르는 루소가 ‘인간 불평등의 기원론’을 써서 책을 보내주자 1955년 8월 30일 답장으로 편지를 썼는데 두번째 문장에서 이렇게 루소를 모욕한다.
“당신의 저작을 읽으면 사람은 네 발로 걷고 싶어질 정도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 습관을 버린 지 60년 이상이나 되므로 유감이지만 다시 그 습관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인간 불평등의 기원론> p138, 최석기 역, 동서문화사 출판
볼테르의 편지를 받은 루소는 답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로서는 우리 인간이 동물로서의 본성으로부터 잃은 일부를 크게 애석하게 여기고는 있지만, 그 본성을 자기 속에서 회복하려고 열망하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이러한 회귀는 당신에게는 매우 클 뿐만 아니라 해롭기도 한 기적이므로, 그 기적을 행하는 일은 신에게만 적합한 일일 것이며, 그것을 원하는 것은 악마만이 하는 일일 것입니다. 아무도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입니다. 당신은 우리를 두 발로 서게 해주었으므로 당신 또한 두 발로 서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같은 책 p143
루소는 20세기까지 낭만주의, 무정부주의, 민족주의, 전체주의 등 여러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백과전서> 프로젝트 참여했지만 무지를 예찬하고 예술과 과학이 도덕에 해롭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고, 자신은 인기 있는 작가이자 음악가였으면서도 글과 음악을 경멸한 고대 스파르타를 찬양하며 “책은 쓸모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책, 영화, 미술, 음악 등 모든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면 더 이상 작가의 것이 아니라고 하듯, 루소의 사상도 루소의 것이 아니었던 셈이다. 본인의 생각과 전혀 다른 사상에 영향을 미치고, 그 사상으로 인해 세상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루소를 비난했다. 이런 일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2018년 이후의 민주당이 이 상태로 지속되면 소위 친노 출신 정치인들과 민주당이 끼치는 해악으로 인해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는 노무현에 대한 평가도 달라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내가 끊임없이 지금의 민주당 주류와는 다른 소수의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루소가 전체주의 탄생에 기여하게 된 이유
루소를 ‘혁명의 아버지’로 이끈 유명한 문장이 있다. 루소가 쓴 <사회계약론> 초반에 등장한다. 인용한 문장은 동서출판사가 펴낸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사회계약론> p163에 있는 내용이다.
“사람은 자유롭게 태어났다. 하지만 여기저기 쇠사슬에 묶여 있다. 자기가 남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자도 그 사람들보다 더한 쇠사슬에 묶인 노예이다.”
루소의 사상과 철학이 전체주의 국가의 탄생에 기여를 하게 된 것은 루소의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그 씨앗을 뿌린 것 역시 부정할 수는 없다. 인간이 노예에서 벗어난 상태가 바로 자유다. 이 자유는 마키아벨리가 말했던 ‘자유는 예속에서 벗어난 상태’와 일맥상통한다. 공화국은 바로 그런 자유를 가진 시민들이 공공선에 복무하는 데서 탄생한다. 그래서 루소는 한 발 더 나간다.
“사회 계약이 허무한 법규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 계약은 누구든지 일반 의지로의 복종을 거부하는 자는 단체 전체가 그에게 복종을 강요한다는 약속까지 암묵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이 약속 만이 다른 약속에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것은 시민들이 자유롭기를 강요당한다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것이야말로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조국에 양도함으로써 그를 모든 개인적 종속으로부터 보호하는 조건이 되고, 정치 기구의 장치와 운용을 만들어 내는 조건이 되며, 시민으로서의 갖가지 약속을 합법적인 것으로 만드는 유일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 같은 책 p180
이 내용은 전체주의 국가의 탄생은 물론이고 파쇼체제의 가능성까지 포함하고 있다. 그것도 ‘인간의 자유’를 위해서 ‘자유롭기를 강요당하는’ 것 조차 정당화하고 있다. 로크의 사회계약론은 ‘지배자와 피지배자 간의 계약’인 반면, 루소의 사회계약은 ‘개인과 개인의 계약’이다. 각자가 가진 자유를 서로 양도하여 서로의 자유를 보호하는 계약이다. 그러나 계약의 영속성을 위해 각 개인은 계약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한다. 루소의 이 논리는 공화주의의 공공선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
루소는 다수결 논리를 부정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극단적 다수결주의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다수의 선택을 받으면 그 선택에 대해 절대 복종해야 하기 때문이다. 절대 복종을 통해 소수자는 사라지고 모든 참여자가 다수자가 된다는 논리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배경은 민주정에 대한 회의 혹은 불신 때문이었다. 루소는 민주정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민주 정치라는 말의 뜻을 엄밀히 해석한다면, 참된 민주 정치는 지금까지도 존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다수자가 통치하고 소수자가 통치를 받는다는 것은 자연의 질서에 어긋난다. 국민이 공무를 처리하기 위해 끊임없이 모여 있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 같은 책 P225~226
이 논리는 오늘날 현존하는 중국과 북한 등의 사회주의 체제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공산당의 지침은 인민의 자유를 위한다는 명분 하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할 규율이 되었다. 중국이나 북한 공산당의 의사결정체제는 물론이고, 오늘날 한국의 정당 의사결정 구조는 루소의 이론이 바탕에 깔려있다. 겉으로 드러난 의사결정 구조는 극단적인 대의제다. 그러나 이들은 그 의사결정을 국민들의 일반의지, 당원들의 일반의지로 명명하면서 마치 직접민주주의의 결과물처럼 포장한다.
이런 의사결정 구조에서는 소수 의견은 존재할 수 없다. 존재해서도 안된다. 이미 국민들의 일반의지, 당원들의 일반의지가 확인된 이상 소수 의견은 그 일반의지를 약화시키고 공공선을 파괴하는 행위가 된다. 그래서 소수 의견을 향해 ‘내부 총질’, ‘이적 행위’, ‘국론 분열’, ‘당론 분열’ 등으로 몰아부친다. 박정희의 유신정권이 모든 집회와 시위는 물론이고 표현의 자유까지 억압하며 내세운 논리가 ‘총화단결’이었다. 여기에 이견을 제시하면 반역자가 되었다. 2018년 이후의 민주당에 등장한 ‘원팀론’ 역시 같은 논리 구조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나는 2018년 이후 민주당을 파쇼 정당이라고 부른다.
정치 철학이나 사상은 보이지 않는, 무색, 무취의 공기처럼 인간의 가치관, 세계관에 녹아 든다. 민주당의 원팀론을 갖고 "루소 철학을 바탕으로 만들었어요.”라고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그 바탕에 흐르는 철학을 통해 루소 철학의 영향을 받았다고 논리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탈이념? 민생 정치? 2008년 2월 노무현 퇴임 이후 2022년에 이르는 지금까지의 한국 정치는 지적으로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후진 정치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지금처럼 철학적으로 근본도 없는 정치가 횡행한 적은 없었다.
루소를 위한 변명
루소의 사회계약론과 자유론, 주권론 등은 오늘날에도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 특히 좌파 진영에서 루소는 자코뱅당의 로베스피에르가 그랬듯이 사상적으로는 여전히 ‘혁명의 아버지’로 존재한다. 그래서 우파에서는 루소의 불우한 삶을 폭로하며 루소의 사상과 철학의 정당성을 무너뜨리려 노력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자기 자식들을 고아원에 보낸 일이다.
루소는 테레즈라는 여인과의 사이에서 1746년에서 1753년까지 다섯 명의 자식을 낳았다. 그리고 모든 아이들을 고아원에 보냈고, 아이들은 고아원에서 죽었다. 그런데 당시 프랑스에서는 이런 일이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도덕적으로 비난받지도, 죄책감도 없이 벌어지는 관습이었다. 1745년 당시에 파리에서만 3,444명의 어린 아이들이 버려졌으며, 그 숫자는 매년 증가했다고 한다. 민간 차원의 복지시설이 등장하고, 이후 국가 차원의 복지제도가 발전한 것도 이런 생활 풍조 때문이었다.
가난했던 루소도 당시 사회 풍조에 따라 아이들을 고아원에 보냈다. 그러나 루소는 훗날 그것이 잘못임을 깨닫고 후회하며 뤽상부르 원수의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제 과오가 제 가슴을 꽉 메웠습니다. 그에 대한 고찰은 <에밀>을 기획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되었습니다. <에밀> 1권을 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같은 책 p452
그리고 <에밀>에는 이런 내용이 담겼다.
“아버지의 의무를 다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아버지가 될 권리가 없다. 아버지는 자기 자식을 스스로 양육하고 교육해야 한다. 빈곤이나 일, 현실 등이 그 의무를 면제해 주지는 못한다. 독자여, 내 말을 믿으라. 정이 있으면서도 신성한 의무를 게을리한 인간에게, 나는 다음과 같이 예언한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잘못 때문에 회한의 눈물을 오랫동안 흘릴 것이다. 그리고 그 고통은 결코 치유되지 않는다.” -같은 책 p453
오늘날 많은 우파 지식인들은 <에밀>에 담긴 내용을 근거로 루소를 이중적인 위선자라고 비난한다. 루소의 철학과 사상을 공격하기 위해 루소라는 인간을 공격하는 전형적인 ‘악마화’ 수법이다. 하지만 이는 시간 순서를 뒤집은 결론일 뿐이다. <에밀>을 쓴 후에 자식을 버린 게 아니라, 자식을 버린 이후에 <에밀>을 썼다.(소위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를 공격하는 행태는 현재 민주당의 주류 문화이기도 하다. 좌파들의 고정관념과는 달리 메신저를 공격하는 매카시즘 문화는 좌파와 우파를 가리지 않은 공통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불평등, 양극화 문제는 새삼스러운 문제가 아니다. 인류가 태동한 이래 불평등은 늘 존재했다. 불평등을 사회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던 과거,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는 현재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인간의 불평등 문제가 심각한 문제로 인식될수록 루소는 계속 불려나올 것이다. 루소를 제대로 읽든, 오해를 하든 중요하지 않다. 루소가 가졌던 문제의식과 그 해법에 대한 공감이 커질수록 우리 사회는 현 상태를 파괴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한 좌파혁명과 우파혁명의 강력한 자기장에 끌려들어갈 것이다.
이미 우파 포퓰리스트와 좌파 포퓰리스트가 정치적으로 성공하고 있다.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과 한국 등 정치 양극화가 심한 나라들이 특히 그렇다. 합의정치, 연합정치가 발전한 유럽조차도 일부 국가에서는 좌,우파 포퓰리스트들이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점차 소수파에서 다수파가 되어 가고 있다. 2022년 오늘날 전 세계는 100년 전 풍경과 흡사 비슷하다. 독일 국민들이 민주적 절차를 지키며, 안정적이고 점진적인 개혁을 주창한 중도파를 외면하고, 급진적인 좌파나 우파 정당에 환호한 결과물이 바로 나치체제다. 중도파를 외면한 결과다. 지금 정치는 과연 어떤가? 당장 한국 정치에서도 중도파는 설 자리가 없다.
이념이나 사상적으로 중도파는 없다. 그러나 균형, 점진적 변화, 안정적 변화라는 중도파의 가치와 문화는 존재한다. 이건 사상이나 철학이 아닌 정치문화의 문제다. 한국 정치문화는 해방 직후의 극단적 대립 상태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정치문화와 맞서 싸우며 통합의 정치 질서를 만들려 노력했던 김대중과 노무현은 우리 곁에 더 이상 없다.